전국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처음으로 26일 실시된 김태환 제주지사(사진) 주민소환투표는 투표율이 11%로 개표 기준(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에 미달해 불성립 결정을 내렸다고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가 밝혔다. 김 지사는 선관위의 최종 투표율 발표 직후 업무에 복귀했다.
이날 오전 6시∼오후 8시에 이뤄진 투표에서 투표권자 41만9504명 중 3분의 1 이상이 투표했을 경우 개표할 예정이었으나 투표인수는 11%(4만6075명)에 불과했다. 김 지사는 “국책 사업인 제주해군기지를 비롯해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을 위한 사업에 대해 도민들이 성원을 보낸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주민투표 승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번 소환투표는 출발부터 말썽이었다. 김 지사의 개인 비리나 부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제주해군기지’ 등의 문제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낮은 소환투표율은 정상적인 국책사업 추진에 대해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제주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소모적인 소환투표로 인해 제주도가 치른 대가는 컸다. 소환투표가 발의된 6일부터 김 지사의 권한이 정지돼 당장 시급한 대정부 예산 절충에서 공무원들이 우왕좌왕했다. 관광객 전용 카지노, 영리병원 등을 추진하는 제주 도정(道政)에도 힘이 빠졌다. 동아시아지역 안보, 평화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제5회 평화포럼’이 11∼13일 제주에서 열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국내외 고위인사가 참석했지만 김 지사는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소환투표에 들어간 지방예산은 19억2000여만 원에 달했다. 제주시 노형동 김모 씨(40·건설업)는 “지역사회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소환운동본부는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지사에 반대하는 소환운동본부 측은 투표자 명단 작성, 공무원 투표 불참 독려 등을 거론하며 관권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찬성 반대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았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윤태현 제주민간사회단체장협의회장은 “소환투표 결과에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며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된다면 제주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덕순 제주대 교수(행정학)는 “국책사업인 경우 주민소환 사유에서 제외하는 등 사유에 대한 분명한 적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투표 결과로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본격적인 속도를 내게 됐다. 해군본부 측은 다음 달 제주도에 환경영향평가심의를 신청할 예정이다. 제주도 심의와 제주도의회 동의 절차 등을 거쳐 올 12월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