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밸리 사람들<12>한국원자력연구원 강시용 박사

  • 입력 2009년 8월 27일 06시 30분


방사선 자극으로 돌연변이 유도
“농업경쟁력 향상에도 한몫하죠”

당뇨에 효과있는 벼 등 10여가지 품종 개발 성공
“로열티 없어 농민에 도움”

무궁화는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국화(國花)지만 그동안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2m가 넘는 키에 진딧물 등 병충해가 많아 집안은 물론 정원에도 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안방에서 무궁화를 키울 수 있게 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가 3년간 연구 끝에 신품종 ‘꼬마’를 개발해 일반에 보급하기 시작한 것.

꼬마는 ‘홍단심 2호’라는 무궁화 품종의 돌연변이로 5, 6년생의 키가 50cm 정도로 작고 꽃과 잎의 크기도 기존 무궁화의 절반에 불과하다. 게다가 즙액이 적어 진딧물 등 병충해에 강해 아파트 베란다나 사무실 등에서 분재로 키우기에 좋다. 이번 품종 개량에는 ‘방사선 돌연변이 육종’ 기술이 사용됐다.

“자연 상태에서도 빈도는 낮지만 항상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있어요. 방사선 돌연변이 육종은 방사선 자극을 통해 돌연변이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죠. 방사선을 쪼이면 돌연변이를 일으킬 확률이 많게는 1000배까지 높아져요.”

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강시용 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44)은 “방사선 돌연변이 기술은 벼와 장미, 식물과 동물처럼 종(種)의 개념을 뛰어넘어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유전자변형기술과는 크게 다르다”며 “방사선이 식물에 남아있지 않고 유전적 형질이 고정된 후대의 식물을 활용하기 때문에 인체에도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충남대를 나와 일본 도쿄(東京)대 농생물학과에서 작물유전자원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농촌진흥청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다 2003년 원자력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벼와 콩, 무궁화, 국화, 들깨 등 10여 종의 품종을 개발했다.

그 가운데 생동찰벼 종자의 유전자를 변형해 만든 ‘녹원찰벼’는 수확시기가 빠르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당뇨 및 동맥경화 등에 효과가 있는 클로로필 등의 색소와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의 함량이 일반 쌀이나 찹쌀보다 높다. 또 수입 동양란(蘭)을 변형해 개발한 ‘동이’와 ‘은설’은 잎이나 꽃 모양, 색깔 등이 기존 품종보다 특이하고 아름답다.

방사선 돌연변이 기술은 농민들의 한숨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해 외국 품종을 도입할 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돌연변이 육종으로 형태와 생태적 특성을 2가지 이상 바꾸면 로열티를 주지 않아도 된다.

강 박사는 이런 유용한 돌연변이 육종 기술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 기술을 활용한 품종개발 수로 보면 한국은 세계 25위 안팎이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이 분야 연구를 계속해 방사선은 물론 중이온을 통한 품종 개발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어요. 중국도 무중력, 진공상태, 방사선(우주에는 다양한 방사선이 있음) 등을 활용해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우주선 육종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죠. 이런 방법으로 개발한 품종이 중국은 작물 재배면적의 20%, 일본은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쌀(칼로스 76)도 같은 방법으로 개발된 품종이에요. 하지만 한국은 1966년 방사선농학연구소를 만들고도 곧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육성하지 않아 최근까지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였지요.”

강 박사는 “최근 농림수산식품부가 대통령 지시로 종자산업 육성 종합대책을 마련했는데 우리 연구소에서 육종 연구센터를 신청했다”며 “앞으로 대학, 연구소, 산업계와 공동 연구를 통해 농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품종들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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