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나노 세탁기에는 은나노가 없다?’
최근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삼성 은나노 세탁기는 나노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아니다’라는 공식 의견을 밝혔다. EPA는 2007년 미국 환경단체들의 탄원을 받아 세탁기의 나노기능을 검증하게 됐다. 환경단체들은 “은나노 세탁기에서 방출되는 살균물질들이 폐수로 흘러 들어가면 생태계 파괴 등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살충제와 똑같은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PA의 조사 결과 삼성 세탁기는 은나노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EPA는 은나노가 아닌 은이온이 나왔기 때문에 삼성 세탁기를 이온생성기기(ion generation device)로 간주했다.
은이온이 1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의 미세한 은나노 입자가 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은이온도 은나노처럼 살균 효과는 인정받는다. 은나노는 안정적인 중성물질인 반면 은이온은 불안정한 물질이어서 빛과 만나면 변색이 된다. 일부 전문가는 “은이온은 화학작용이 일어나기 쉬워 기술력 없는 업체가 은이온으로 식음료 등을 만들 경우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각종 가전제품과 주방용품이 ‘은나노’라는 이름을 달고 쏟아져 나왔지만 안전성과 유효성 검사 기준이 뚜렷이 마련되지 않아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정말 은나노 기술을 사용했는지, 얼마만큼 은나노 입자를 함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기업 광고만 믿을 수밖에 없다.
기준이 불분명한 만큼 은나노에 대한 오해도 깊다. 최근 중국 내 페인트공장 근로자 2명이 폐 기능 저하로 사망하면서 ‘나노 물질을 들이마시면 유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유일재 호서대 교수(유럽공동체 행정부 위해성평가 자문위원)는 “실험 결과 은나노 입자가 공기 1cc당 100만 개가 넘어야 인체에 해를 줄 수 있었다”며 “일상적으로 쓰는 은나노 제품에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서구 국가들은 개발비용의 5% 이상을 나노 물질의 안전성 검사에 사용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은나노 제품을 살 수 있도록 검사 기준을 빨리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