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반장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 반장을 꿈꾸는 초등학생들은 가슴이 설렌다. 반장선거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 반에 열 명 이상,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반장선거에 나서는 반도 수두룩하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도전자가 많으니 학급임원 수도 많아졌다. 학교에 따라 남자 반장과 여자 반장, 남자 부반장과 여자 부반장을 따로 뽑기도 하고, 한 학기에 두 번 반장선거를 하기도 한다. 전교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학생 수도 만만치 않다. 전교회장 도전자가 10명에 가까운 학교도 많다. 일부 학생은 학생임원 경력이 장차 국제중이나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선거에 뛰어들기도 한다.
인기가 높아져만 가니, 선거운동에서 전에 없던 양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올해 1학기 때 학급 반장, 전교 부회장에 당선된 차윤서 군(서울영원초 5)은 “전교 부회장 선거 때는 벽보랑 피켓을 어딘가에 맡겨서 제작한 친구도 봤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내준 큰 벽보는 원래 하얀 바탕이었지만 그 친구의 벽보는 세련된 초록색이었다. 벽보에는 TV 오락 프로그램 자막에서나 봤던 예쁜 글씨체로 ‘기호 ○번 ○○○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질 만큼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이처럼 반장·전교회장 선거용 벽보나 피켓을 대신 만들어주는 업체를 활용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반장선거, 전교회장 선거 대비반을 운영하는 어린이 스피치 학원이나 반장선거만을 전문으로 지도하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있다.
일부 학교는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올해 전교회장이 된 박하영 양(서울대방초 6)도 선거운동을 할 때 학교에서 정한 몇 가지 규칙을 따랐다. 자신이 만든 피켓 여러 개를 쓰는 대신 학교에서 제공한 4절지 크기의 스티로폼 피켓 2개만을 쓴다든가, 피켓에는 자신의 이름, 사진, 선거공약 세 가지만 쓴다든가 하는 것이 이 학교 선거운동의 규정이었다. 선거운동기간도 이틀로 정해져 있었고, ‘참모’(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친구)는 하루에 다섯 명만 쓸 수 있었다. 박 양은 “친구들에게 음식이나 문구류를 사주면서 참모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어 참모의 수를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 군과 박 양은 학교가 정한 규칙을 지키면서도 나름의 전략을 세워 자신을 어필했다. 박 양은 선거연설문을 쓸 때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분위기의 글을 작성했다. 반장선거 때는 주로 유행에 맞춘 이야기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략을 쓴다. 올해 초 반장선거에 나갔을 때는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예로 들었다. 선거연설을 안 듣고 있던 친구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고개를 쑥 들었다. 반면, 전교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는 자신의 강한 면모를 강조할 수 있는 예를 들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가난한 마약중독자에서 미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바뀌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처럼 저도 여러분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연설을 한 것이다. 선거연설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운동을 좋아하는 차 군은 방과 후에 모르는 학생들과도 축구, 야구를 함께 하면서 4∼6학년 남학생들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선거연설에도 자신의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두 학생은 선거연설을 할 때는 약간의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비록 선생님의 만류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차 군은 일명 ‘종이 찢기’ 퍼포먼스를 준비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왕따’가 없어져야 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미리 준비해온 ‘왕따’라고 적힌 종이를 찢어 보이는 것. 차 군은 “만약 종이 찢기를 했더라면 강한 인상을 주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양은 선거 연설문의 곳곳에 괄호를 치고 자신이 취해야 할 동작이나 어조 등을 ‘지문’ 형식으로 메모해뒀다. “여러분이 꿈을 꿀 수 있도록 제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부분에는 ‘(가슴에 손을 얹고)’라고 썼고, “준비된 저를 뽑아주십시오!”라는 구절에는 ‘(환호하듯)’이라고 적었다. 실제 연설에서도 마치 연극을 하듯 사전에 정한 어조, 동작들을 실행에 옮겼다.
두 학생은 “반장이 되면 이로운 점이 많다”고 했다. 박 양은 “한 반의 대표가 되면 선생님들이 심부름을 시키실 때도 나를 주로 지목해 다른 학생보다 내 능력을 더 인정해주시는 느낌이 든다”면서 “친구들한테도 잘 알려져 인간관계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차 군은 반장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자신 안의 변화에서 찾았다.
“남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발표력도 생기고 자신감도 늘어났어요. 앞으로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서도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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