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공개를 거부한 일부 수사기록의 제출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는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 재판에서 법정 소란사태가 벌어져 방청객 4명이 재판부에서 5일간의 감치(監置)명령을 받고 구금됐다.
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한양석) 심리로 열린 재판은 재판부가 방청객을 126명으로 제한하면서 시작 전부터 소동이 벌어졌다.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지난달 20일 열린 재판이 방청객의 집단 소란으로 중단된 적이 있어 재발 방지를 위해서였다. 1일 배포된 좌석표는 재판 시작 20분 전에 이미 동이 났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수십 명은 표를 받지 못하자 법원 경위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재판이 시작된 뒤에도 법정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재판부가 “법정 소란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폐쇄회로TV 외에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했고 법정 소란은 구속 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카메라를 왜 설치했느냐. 자유로운 재판을 하라”며 소리쳤고, 재판장은 곧바로 퇴정을 명령했다. 일부 방청객이 항의했지만 재판부는 굽히지 않았다. 법정 내 질서 원칙을 재차 단호하게 설명했고 웅성거림은 잠시 잦아들었다.
하지만 재판부가 증거목록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려 하자 이번엔 피고인들이 항의에 나섰다. 피고인 중 1명인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은 “국선 변호인에게 재판을 맡길 수 없다. 사선 변호인을 다시 구할 때까지 재판을 좀 더 연기해 달라”고 말했다. 이미 ‘수사기록 제출’ 여부를 놓고 수차례 재판이 미뤄진 상황이어서 재판부는 “오늘은 간단한 서류 증거 조사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재판 연기를 거듭 요구했다.
이때 ‘×’자 표시가 된 흰색 마스크를 쓴 여성 4명이 방청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묵언의 항의 표시를 한 것. 법정은 곧 술렁거렸고 재판장은 곧바로 이들에 대해 감치 명령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방청객과 법정 경위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재판부의 중재 아래 이들은 피고인 대기석 쪽으로 이끌려갔다. 이후 피고인 9명은 “더 재판을 받을 수 없다. 벽을 보고 앉아 있겠다”며 재판부에 등을 돌려 앉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자 방청객 중 한 명이 일어나 “우리도 재판을 거부하는 표시로 법정에서 나가겠다”고 말했고, 이에 방청객 50여 명이 우르르 법정 밖으로 나갔다.
재판부는 국선 변호인의 참관 아래 검찰 측과 함께 채택된 서류 증거 조사를 마쳤다. 재판부는 “일주일 뒤 재판을 다시 할 테니 신속하게 변호인을 다시 구하라”며 재판을 마쳤다. 재판부는 곧바로 법정 소란자 4명에 대한 재판을 열었고 5일간 서울 서초경찰서 유치장 구류 명령을 내렸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재판장은 법정 소란 행위자에게 퇴정 명령 또는 최대 20일의 감치,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용산 철거민 참사 재판은 4월 처음 열렸으나 검찰 측이 수사기록 1만여 쪽 가운데 3000여 쪽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재판부는 검찰에 미공개기록을 공개할 것을 지시했지만, 검찰은 “피고인 측에서 수사 자료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재판부는 “유죄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는 만큼 증거를 내지 않으면 검찰에 불리하다”고 고지한 뒤 재판을 진행해 왔다. 이에 피고인 측은 재판부에 불만을 표시하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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