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주택의 임대차계약을 위임받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입주자들과는 전세계약을 맺고 건물주에게는 가짜 월세계약서를 건넨 뒤 수십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이중계약 사기’사건과 관련해 건물주에게 전세보증금의 일부를 물어줄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30부(부장판사 강민구)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대 다가구주택 세입자 35명이 건물주를 상대로 낸 18억여 원의 전세보증금 반환청구소송에서 세입자들에게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건물주는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의 60%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건물주가 자신의 부동산을 중개업자에게 대리 관리하게 한 것은 민법상 사용자 책임에 준하는 관계가 인정된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앞서 올 1월 1심 재판부는 건물주에게 이중계약 사기행위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세입자가 꼼꼼히 확인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건물주의 보증금 반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부동산 중개업자 최모 씨는 2001년부터 다가구주택이 많은 반포동 일대에서 20여 개 다가구주택의 건물주로부터 임대차계약을 위임받아 6년 동안 입주자들과는 전세계약을 맺어놓고, 건물주에게는 월세계약을 맺은 것처럼 꾸민 서류를 건넨 뒤 지난해 1월 전세보증금 57억 원을 챙겨 해외로 달아났다. 최 씨는 한 달 뒤 인터폴과 공조한 경찰에 붙잡혔고, 일부 세입자들은 “최 씨의 행위는 건물주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므로 건물주도 피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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