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아들 아이스박스 태워 강둑으로 밀어내 살리고는…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9월 7일 02시 59분



▲제발 돌아오기를실종된 서강일 씨의 어머니(가운데)와 부인(오른쪽)이 6일 오후 경기 연천군 왕징면사무소에 마련된 가족 대기소에서 서 씨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연천=조종엽 기자  ☞ 사진 더 보기
▲제발 돌아오기를
실종된 서강일 씨의 어머니(가운데)와 부인(오른쪽)이 6일 오후 경기 연천군 왕징면사무소에 마련된 가족 대기소에서 서 씨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연천=조종엽 기자 ☞ 사진 더 보기
40세 아빠, 끝내 급류 휘말려
연천군 5명 실종뒤 대피 방송

“물보라가 텐트 앞까지 밀려왔지만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전날 밤 경기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 임진강 중간의 모래섬에서 잠들기 전 보름달이 밝게 비춰 기분 좋게 텐트 속에서 동료들과 잠들었던 김모 씨(37). 그는 6일 오전 5시 텐트 앞에 넘실거리는 물보라를 믿을 수 없었다. 별일 아니려니 하던 기대감은 곧바로 밀려오는 물폭탄 앞에 허물어졌다. 김 씨가 급히 사람들을 깨웠지만 강물은 그 순간 텐트를 덮쳤다. 이날 하루 북한이 쏟아 보낸 임진강 물 4000만 t의 첫물이 도착한 순간이었다.
○ 순식간에 벌어진 비극
다급했지만 애끓는 부정(父情)은 아들을 아이스박스에 태운 뒤 급류에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하지만 야속한 물폭탄은 아버지 서강일 씨(40)를 끝내 실종자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희생 속에 강둑에 닿은 아들 서모 군(12)은 500여 m를 내달리며 아버지를 불렀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김 씨와 서 군만 목숨을 건졌고 5명의 생사는 6일 밤 12시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94년 결혼한 서 씨와 부인 한 씨는 각각 택배회사 지입 사업자와 보험설계사로 맞벌이를 하며 모은 돈에 은행 대출을 보태 경기 고양시 변두리에 ‘내 집’을 마련했다. 단란한 가족이었다. 서 씨는 주말이면 아들을 데리고 낚시를 즐겼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남편 이경주 씨와 아들이 함께 실종된 김선미 씨(36)는 “가지 말라고 할걸. 우리 아들 우리 남편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며 울다 탈진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 무너진 경보체제
이날 임진강 남방한계선 인근 필승교 수위는 오전 4시경부터 이미 높아지고 있었다. 이 씨의 형 이용주 씨(46)는 “철책선 군부대는 수위가 높아지는 것을 먼저 알았을 텐데 이를 알리지 않고 무엇을 한 것이냐”고 항의했다. 군 당국은 최전방 초소에서 북한 쪽 임진강 수위가 평소와 달리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해 발생 2시간여 전인 오전 3시경에 감지했다. 하지만 임진강 수위를 관할하는 한강홍수통제소나 자치단체 등에 전혀 통보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군 관계자는 “민간 피해는 안타깝지만 군도 홍수경보 정보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연천군과 수자원공사가 야영객들에게 대피하라는 방송을 내보낸 것은 이미 급류에 5명이 휩쓸려간 뒤인 오전 6시 10분이었다.
실종자 백창현 씨(39)의 동서 최천수 씨(51)가 망연해하다 붉어진 눈으로 “대피를 시킨 뒤 방류를 해야 맞는 것이지 예고도 없이 이렇게 사람을 물에 휩쓸려가게 하는 것이 같은 민족이 할 짓이냐”며 “대응이 늦은 경위도 밝혀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연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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