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석 군(15)이 문제를 냈다. 박 군을 포함한 학생 셋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박 군이 공부하다 직접 만든 물리 문제. 누군가 해결해주길 기대하며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지만 아직 답이 없다. 박 군과 함께 펜을 꺼내든 이성환 군(14)과 송성종 군(15)은 함께 의논하며 짧은 시간 동안 문제에 집중했다.
세 학생은 올해 나란히 서울과학영재학교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좋아하는 과목,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달랐지만 매 전형에서 수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100% 선보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1일 ㈜타임교육 하이스트 서울 목동 본원에서 이 학원 출신으로 서울과학영재학교에 합격한 세 학생을 만났다. 약 두 달에 걸친 전형과정을 돌아봤다.》
과학열정 100%+α… 나만의 체험으로 ‘유연한 사고’ 훈련했죠
[1단계] 차별화된 나만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전형의 첫 번째 관문은 1단계 학생기록물 평가(수상 실적, 내신 성적, 추천서, 자기소개서)였다. 세 학생은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수학·과학에 대한 평소 관심, 잠재력,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구체적으로 담았다.
이 군은 평소 ‘아이, 로봇’ ‘A.I.’ ‘터미네이터’ ‘트랜스포머’ 같은 과학영화를 보면서 정리한 생각, 예를 들어 ‘실제로 이런 로봇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혹은 ‘생활에 영화 속 로봇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등에 초점을 맞춰 지원동기를 작성했다. 이런 호기심을 바탕으로 과학에 흥미가 생겼고, 미래에 로봇을 연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군은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앞으로 대체에너지 개발에 관해 연구하고 싶은 꿈을 강조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평소 생각했던 지구 온난화 문제와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난, 물 자원 고갈 등 예측되는 재앙에 대한 견해와 이에 대비하기 위한 대체에너지 개발 목표를 구체적으로 적었다.
송 군은 중학교 1학년 때 전국 초중학생 IT 꿈나무 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뒤 참여하게 된 과학캠프에서 로봇을 직접 조립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특히 다른 학생들과 다른 방식으로 팔이 작동하는 로봇을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경험을 생생히 기록했다.
세 학생은 모두 관심 분야에 빠지게 된 계기와 과정, 이를 통한 향후 학업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2, 3단계] 생활 속 학습으로 ‘통합+창의적’문제 해결
2단계는 영재성 검사와 수학능력 평가, 3단계는 창의적 문제 해결력 평가가 진행됐다. 전형의 핵심은 해당 과목의 지식뿐 아니라 언어 능력, 창의성, 사고력 등의 요소를 평가하는 데 있었다. 3단계 수학 10개 문항 중 1∼3번 문제는 수학, 과학 통합문제였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통해 확률을 계산하는 문제가 한 예.
서술형 문제 중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돌고래가 음파를 쏘아 물체의 위치를 찾는 방법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다. 이 군은 돌고래가 물체의 위치를 찾는 것은 음파가 반사되어 오는 방향으로, 물체와 돌고래가 떨어진 거리는 음파가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물체의 모양은 돌아오는 음파의 형태나 모양으로 알 수 있다고 서술했다. 주어진 B4 용지에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관건.
세 학생은 “생활 속에서 수학·과학을 늘 접했던 것이 문제 풀이에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공통적으로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시리즈와 ‘앗 시리즈’ 등 과학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박 군은 “‘과학동아’ 같은 잡지를 읽으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교과서와 과학만화도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모르는 문제는 바로 선생님에게 물어보지 않고 책의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만든 위의 물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플라스가 전해주는 천체물리학 이야기’라는 책을 읽는 식이다.
이 군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는 과학 관련 기사나 콘텐츠를 매일 꼬박꼬박 읽었다. 모르는 내용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반드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때까지 공부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관한 글을 읽으면 며칠 동안 양자역학, 뉴턴역학 등 관련 내용을 찾아봤어요. 그동안 축적된 수학·과학 관련 활동과 공부가 모든 전형에 적용됐던 것 같아요.”(이 군)
글쓰기 주제는 ‘휴리스틱 기법’이었다. 휴리스틱 기법은 한정된 시간 내에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답 대신 현실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답을 구하는 방법을 말한다. 지문에 주어진 휴리스틱 개념을 바탕으로 ‘과학자의 자세’에 대해 40분 동안 600자 내외의 논술문을 써서 제출했다.
송 군은 ‘유연한 생각을 하는 것이 과학자의 올바른 자세’라는 결론을 냈고, 박 군은 ‘미래의 누군가가 지금은 옳다고 여기는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고, 이변이 생길 수도 있다. 현재 과학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정리했다.
[4단계] 돌발질문 ‘유연한 사고’가 필수
수학심층면접에서는 상상력과 창조성을 요구하는 문제가 나왔다. 제한시간에 문제를 풀고 풀이과정을 면접관 앞에서 직접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개별면접 질문은 주로 자기소개서를 기초로 한 학교생활 관련 질문이 많았다. 이 군은 ‘기숙사에서 예민한 룸메이트와 한방을 쓰게 되었다. 자신이 밤에 공부하려고 하면 룸메이트는 화부터 낸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군은 “일단 룸메이트를 설득하고 휴대전화 플래시를 이용하는 등 불빛을 최소화해 공부하겠다”고 답했다.
박 군은 ‘사람이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인 이유를 설명하라’는 돌발질문을 받았다. 박 군은 “다른 사람의 말은 한 번 더 듣는다는 자세로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귀는 두 개이고,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어 늘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입은 한 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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