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방재시스템 곳곳 구멍… 전방위 조사 불가피

  • 입력 2009년 9월 8일 02시 56분


고장 - 수자원公 자동경보기 먹통
팔짱 - 軍, 보고 받고도 전파 안해
늑장 - 119-경찰, 신고전까지 깜깜… 연천군 사고난 뒤 경고방송

6일 오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경기 연천군 미산면 임진교 하류 2km 지점 모래섬. 야영을 하고 있던 김기복 씨는 텐트 바닥이 떠오르는 느낌에 잠을 깼다. 강물이 불어 텐트 바닥이 물컹거렸다. 김 씨는 신발도 신지 않고 “물이 넘친다”며 소리를 질러 일행 6명을 깨웠다. 일행들은 소지품도 챙기지 않은 채 모래섬의 높은 쪽으로 옮겨갔지만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텐트 고정지지대를 붙잡고 버티던 백창현 씨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일행은 이두현 씨를 필두로 김 씨, 이경주 씨 부자, 서강일 씨 부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물살을 피해 세로방향으로 섰다.

그러나 일행은 10분을 채 버티지 못했다. 이두현 씨가 쓸려가면서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하류로 떠내려가던 김 씨는 강둑의 버드나무 줄기를 붙잡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동이 트기 전이어서 주변은 컴컴했지만 김 씨는 아이스박스를 잡고 살아난 서모 군을 찾아냈다. 김 씨 일행이 촌각을 다투며 사투를 벌이던 순간 관계당국은 임진강물이 갑자기 불어난 사실 자체를 아예 몰랐거나, 알고도 관련 기관에 통보하지 않아 이들을 구해내지 못했다.

○ 수자원공사 무인시스템 작동안해

수자원공사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임진강 최북단 필승교 수위가 3m를 초과하면 자동으로 안내방송을 하는 무인 자동경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시스템은 필승교 수위가 3m를 넘은 오전 3시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수자원공사는 7일 자체 조사 결과 “5일 오후 10시 22분부터 6일 오전 11시54분까지 13시간 동안 원격 데이터의 전송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자원공사는 오전 6시 10분 연천군이 대전 수자원공사 본사 당직실로 문의전화를 한 뒤에야 강물이 불어난 사실을 알고, 수동으로 관계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시스템 관리업체에 연락해 오전 7시 20분에야 대피경보를 발령했다. 당직 근무를 집에서 하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당일 수자원공사 임진강 건설단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 군, 참사 2시간 전 징후 감지

국방부에 따르면 임진강 필승교 지역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초병은 6일 오전 2시 50분경 평소 1m 안팎이던 수위가 1.2m까지 상승한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상황실에 보고했다. 참사가 발생하기 약 2시간 전이었다. 임진강 수위 상승 보고를 받은 해당 부대는 오전 3시 10분경 필승교에 설치된 침투방지용 철책을 들어올리고 연대와 사단, 군단을 거쳐 합참에까지 보고했지만 군은 이 과정에서 강물이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기관에 알리지 않았다. 군 당국은 수자원공사가 관련 조치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 연천군 “CCTV, 무용지물”

연천군은 오전 5시 반경 소방서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뒤에야 강물이 불어난 사실을 알았다. 군은 임진강 주변에 홍수 안내방송 시스템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오전 6시 10분에 방송됐다. 군청에는 임진교 수위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CCTV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으나 사고 상황이 접수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 소방서, 경찰서 “신고로 알았다”

연천소방서는 오전 5시 10분경 “나는 빠져나왔지만 20여 명 가까이 물에 고립돼 있다”는 여행객의 신고로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을 알았다. 이후 고립된 여행객들을 구조했지만 김 씨 일행 7명은 이미 거센 물살에 맞닥뜨린 뒤였다. 연천경찰서도 오전 5시 24분 “임진강 물이 불어나고 있다”는 주민의 신고가 있고서야 사태 파악에 나섰다. 생존자 김기복 씨는 “일행 중 한 명이 휴대전화로 ‘야영하러 나왔다가 모래섬에 고립돼 휩쓸려 갈 것 같으니 구조해 달라’고 신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천소방서와 연천경찰서는 “신고 통화기록을 조사했으나 모래섬에서 구해달라는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연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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