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스티븐 호킹’ 이원규 박사
(신광영 앵커) 루게릭병, 의식은 또렷하지만 전신이 마비돼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 병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도 불립니다. 최근 루게릭 병 환자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있죠.
(구가인 앵커) 영화 못지않은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신념을, 자신의 생으로 증명하고 있는 이원규 박사를 제가 직접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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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사랑 내곁에’ 예고편)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운동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죽음에 이른다는 병,또렷한 의식으로 굳어져가는 몸을 지켜보는 일은 또 다른 고통입니다.
발병 원인도, 치료 방법도 알려지지 않은 루게릭병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 불립니다.
(현장음)
“문제는 어떻게 삶을 받아들이는...”
굳어버린 혀로 힘겹게 말합니다.
이원규 씨는 10년째 루게릭병을 앓고 있습니다.
발병 사실을 알게 됐던 1999년 당시, 마흔 살의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그는 고3 담임을 10년 가까이 지낼 만큼 의욕적인 선생님이었습니다.
부부교사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시간을 쪼개 시를 쓰고,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는 열성적인 문학도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원규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제 아예 죽는다...(생각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루게릭병 환자는 2000명 내외. 통상 발병 5년 이내에 사망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씨는 그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살아남았습니다.
그 사이 학업을 이어가 2004년엔 국문학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인터뷰) 이희엽 / 이원규 박사 아내
“사실 제가 많이 말렸거든요. 그거해서 뭐하냐고 하지 말라고 하고...(그런데 박사를 받으니) 자랑스럽더라고요.”
그의 옆에는 늘 아내가 있습니다.
물을 마시는 일부터, 목을 가누고 대화를 하는 일까지...
20년 결혼생활의 절반을, 부부는 함께 이인삼각 경기를 해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희엽 / 이원규 박사 아내
“우리남편이 빨리 건강 찾고 행복하게 즐거운 나의집 노래를 부르면서 살고 싶어요.”
이씨는 아내가 출근을 한 후 매일 반나절 이상을 컴퓨터 앞에서 글을 씁니다. 5분 안에 쓸 수 있는 짧은 글도 그에게는 3시간 넘게 걸리는 작업이지만, 묵묵히 글쓰기를 계속해 책도 냈습니다.
이제는 줄곧 의지하던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까지 굳어버려, 왼쪽 엄지발가락을 이용해 글을 씁니다.
(인터뷰) 이원규
“우선 내년에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습니다.”
이씨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며, 자신과 같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힘이 되길 꿈꿉니다.
(인터뷰) 이원규
“생명이 남아 있는 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 글로 희망과 용기를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동아일보 구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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