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이 11일 오전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며 장관으로 모셨던 천정배 민주당 국회의원과 ‘깜짝 만남’을 가졌다. 천 의원은 이날 서울 용산 철거민 화재참사 사건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하며 검은 상복 차림의 유가족 8명과 함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마침 출근하던 김 총장은 옛 상사를 보고 승용차를 세웠다.
김 총장은 차에서 내려 천 의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가서 얘기하시죠”라고 했다. 하지만 천 의원은 “지금은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이어 천 의원은 “총장이 (청문회에서) 수사기록을 공개한다고 했던 만큼 일선 실무진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기록을 봐달라”고 요청했다. 김 총장은 “(공개할 수 없다는 실무진의) 보고는 받았지만 직접 다시 보겠다”고 답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주변에 있던 일부 시위대는 “보고를 받았으면 뭐하나, 인정을 못하는데” “8개월 동안 장례도 못 치렀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천 의원이 시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 총장이 즉석에서 결정해 이뤄졌다. 김 총장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검 대변인 등 검찰 관계자 수십 명이 정문 앞에 황급히 나와 김 총장이 시위대로부터 봉변을 당하지 않을지 대비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2분 남짓한 짧은 만남을 마친 뒤 김 총장은 주변에 있던 기자들에게 “천 장관님이 청문회 전 격려도 해주시고 신문기고를 통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힘이 났다. 법으로 우리 사회가 다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천 의원이 지난달 1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내가 아는 김 후보자는 총장으로 적격인 사람이며 검찰의 변화를 이끌 적임자”라며 야당 중진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김 총장을 공개 칭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도 일부 수사기록 비공개 방침을 되돌리진 못했다.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3000쪽에 이르는 기록을 넘겨받아 살펴본 뒤 “검토 결과 천 의원이 요구한 기록은 피고인들의 재판과 무관해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해당 기록은 경찰의 직무집행이 적법했는지에 대한 부분으로 이미 무혐의 결론이 내려져 공개가 불가능하므로, 철거민 측에서 꼭 봐야 한다면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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