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년전 유럽, 산모 사망률 20%를 1%로 낮춘건…

  • 입력 2009년 9월 14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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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손 씻어라”
오스트리아 한 의사의 외침
신종플루 시대 여전히 유효
국내 의료진들의 손은…
“30초이상 씻는다” 17.5% 그쳐

《“손 안 씻는 의사는 살인자야!” 1840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하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어느 날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여자 산파들이 신생아를 받는 조산소보다 의대생과 의사들이 아이를 받는 출산실에서 산모가 사망하는 비율이 더 컸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출산은 목숨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쇄구균 박테리아 등에 감염돼 아이를 낳다 사망하는 산모가 5명 중 1명이었다.》

그때부터 제멜바이스는 의사와 의대생들의 하루 일과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실습을 위해 부검을 마친 뒤 아이 받는 것을 지켜보겠다며 수술실에 들어오는 의대생 가운데 손을 씻고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멜바이스는 “석회수로 손을 깨끗이 씻지 않는 의사와 의대생은 절대 수술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한 달 뒤 변화는 놀라웠다. 그의 수술실에서 산모가 사망하는 비율은 1%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핀잔과 비판뿐이었다. 제멜바이스가 학회에서 “손 안 씻는 의사는 살인자”라고 하자 동료 의사들은 “의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며 그의 ‘손 씻기’ 주장을 폄훼했다. 당시엔 수도 사정도 열악했다. 아이러니일까. 제멜바이스가 1865년 세균감염으로 사망하자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치부됐다.

제멜바이스가 죽은 뒤에도 의료진의 손을 통한 감염 가능성은 조심스럽지만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1879년 프랑스 파리의 학회에서 한 의사가 동료 의사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바로 의사 당신들 때문에 산모들이 감염되고 있단 말입니다. 다른 여자환자를 진찰했던 그 손으로 건강한 산모들에게 옮기면서요.” 이 의사가 바로 미생물과 전염병의 관계를 밝혀낸 루이 파스퇴르였다. 그러나 실제로 의사들이 손 씻기 지침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의 일이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의료에 관한 한 선진국 수준이라는 한국은 어떨까.

2005년 한림대성심병원은 의료진이 얼마나 손을 잘 씻는지 조사했다. 내과와 외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44명, 중환자실 인턴 4명, 상주 주치의 2명, 중환자실을 출입하는 의사 전부와 간호보조 인력 10명이 대상이었다. 결과는 장갑 착용과 관계없이 혈액, 체액, 분비물, 배설물, 그리고 오염된 기구를 만진 뒤 비누나 소독제를 이용해 하루 10∼15회 씻는 사람이 44%였다. 그 이상도 30%에 달했다.

횟수 면에서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했다. 손을 씻는 데 들이는 시간은 10초가량이 38%였고 9초 이하도 11%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누로 손을 씻는 경우 최소 30초 동안 정성껏 씻어야 세균이 약 90% 제거된다고 설명한다. 조사대상자 중 30초 이상 씻는 경우는 17.5%에 불과했다. ‘현재 손 씻는 방법이 완벽하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률은 60%를 넘었다. 2차 병원에서 연수를 마친 한 내과 전문의는 “잠잘 시간도 없는데 인턴, 레지던트들이 드레싱 처치를 하기 전후에 손을 문질러가면서 씻는 사례는 드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환자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의료진이 바로 인턴, 레지던트다.

10일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발생한 병원 내 첫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사례도 ‘의료진의 손’ 때문일지 모른다. 4월부터 당뇨와 만성신부전증 심장질환을 치료받던 이 남성(61)의 감염 원인을 두고 의료진은 면회객들을 의심하고 있지만 병원 현실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르다.

실제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병원감염실태’에 따르면 2007년 하반기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400병상 이상 전국 57개 종합병원에서 발생한 병원감염은 2285건에 달한다.

질병관리본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병원 내에서 살고 있는 ‘독한 바이러스’다. 세균 중 페니실린계 항생제도 잘 안 듣는 황색포도상구균이 있다.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이다. MRSA 치료는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로 하는데 이 항생제조차 듣지 않는 장구균(VRE)까지 등장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암행어사’까지 두고 의료진의 손 씻기를 감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을 씻지 않으면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문이 아예 열리지 않는다. 치료제가 듣지 않는 신종 플루 내성 바이러스까지 등장한 지금, 제멜바이스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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