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예요. 아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요. 잘 지내시죠? 지난달에 저 잠깐 집에 내려갔다 온 거 모르셨죠. 마음이 안 잡혀서 엄마 일하시는 곳에 다녀왔어요. 평소라면 모텔 안을 청소하고 계셨을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 일을 돕고 계시더라고요.
모텔 청소를 하는 엄마와 세 번째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나. ‘엄마의 인생은 왜 늘 저렇게 고단해야만할까. 나는 왜 엄마를 돕지는 못할망정 고생만 시킬까’ 생각했어요. 혹시나 엄마에게 들킬까 봐 몰래 훔쳐보고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어요.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점수는 작년보다는 오른 것 같아요. 엄마한테 전화했잖아요. “성적 계속 오르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고. 담담하게 통화하면서도 얼마나 불안했던지.
8월에 저 경찰대와 사관학교 떨어졌을 때 많이 힘드셨죠? 작년 이맘때와 상황이 너무 똑같아서. 작년에도 두 학교 모두 1차 학과시험에서 떨어지고 많이 괴로웠잖아요. 그때부터 한참을 방황했고요. 결국 수능에서 형편없는 성적이 나와 울면서 ‘마지막 수능’을 결심했었죠.
올해도 같은 결과를 가지고 엄마에게 전화하려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어요. 아무렇지 않게 “저 떨어졌어요.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고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라고 얘기할 때 눈물을 꾹 참았어요. 1차 시험에 합격하면 곧장 집으로 내려가서 ‘반쪽이지만 성공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엄마 안심시켜드리고 싶었거든요. 죄송해요.
시험 날은 다가오는데 점수는 제자리걸음이었던 지난여름엔 갑자기 글자가 안 보일 때가 있었어요. 책을 보고는 있는데 흰색 종이 위에 흑색 선만 보이는 거예요. 글자가 검은색으로 뭉개져 보이지 않았어요. ‘올해는 무조건 합격’이라고 큰소리는 쳤는데 작년과 같은 결과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을 감당할 수 없었나 봐요.
하지만 엄마, 저 요즘 다시 마음잡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공부하다 보면 새벽 4시가 넘을 때도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8시에는 일어나 독서실에 가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단어장 들고 외면서 식당에 가고, 단어 외면서 밥을 먹어요. 또 나 밥 잘 안 챙겨먹는다고 걱정하시겠네.
엄마, 저의 2년은 버린 셈 쳐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엄마의 지난 2년이 버려지는 건 싫어요. 집안 형편 뻔히 아는데, 마음잡으라고 엄마가 기숙학원 등록비 손에 쥐여주셨을 때를 잊지 못하겠어요. 아깝지 않도록 제가 잘할게요.
매일 ‘나를 버리자’는 각오로 공부해요. 이제 결전의 날이 60일 정도 남았어요. 방황할 때마다 “너 정말 이대로 포기할 거냐”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며 따끔하게 조언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다행이에요. 늘 힘주는 친구들 생각해서라도 올해는 꼭 합격해야할 것 같아요.
저 하나만 보시고 고생하시는 엄마.
‘아들, 뭐 필요한 거 없어? 밥 잘 챙겨먹고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 우리 아들 믿는다.’
엄마가 보내주신 이 문자 저장해놓고 매일 보는 거 모르시죠? 저 끝까지 힘낼 게요. 믿어주세요.
※이 편지는 지방 출신으로 현재 서울 양천구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2010학년도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 씨(20)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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