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아지매들 ‘女군자 장계향’에 빠지다

  • 입력 2009년 9월 16일 06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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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성리학 능통-현모양처 생애 재조명 특강에 여성 수강생 몰려

“이왕이면 장계향을 본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자기를 낮추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소중한 가치 아닐까요.”

경북 김천에서 열리고 있는 ‘여성 군자(君子) 장계향 아카데미’의 수강생 이현애 씨(54·주부)는 15일 “장계향의 삶에서 나는 향기는 확실히 본받을 점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1남 1녀를 키운 이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울산으로 시집을 간 뒤 다시 구미에서 20년을 살다 몇 해 전에 김천에 정착했다”면서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세월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에 잠길 때가 있는데 장계향의 삶은 나에게 하나의 방향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여성 군자’로 불렸던 장계향(1598∼1680·사진)이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다. 안동 출신인 그는 19세에 재령 이씨 가문에 후처로 들어가 영양군에서 숨지기까지 전처와 자신이 낳은 7남 3녀를 훌륭하게 키웠고, 셋째 아들이 이조판서를 지내 ‘정부인(貞夫人)’ 품계를 받았다. 그를 ‘정부인 안동 장씨’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백과사전인 ‘음식디미방’도 그가 75세 때 펴낸 작품이다.

지난해 대구와 안동에서 처음 열린 이 아카데미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으나 이번에는 300여 명이 참석해 강의가 열리는 날이면 30∼60대 여성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다. 8월부터 12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열리는 이 아카데미는 장계향과 음식디미방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21일에는 ‘천재의 마음으로 꿈꾼 시대의 표정’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선보인다. 강의는 시인이자 차(茶) 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정동주 씨(60·경남 사천시 용현면)가 맡는다. 정 시인은 조선시대를 연구하던 중 장계향의 삶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여성 군자’로 불렸다는 것이다. 군자라면 흔히 남성을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대중이 장계향을 군자라고 부른 것은 그의 삶이 갖는 독특한 면 때문이다. 정 시인은 “장계향은 성리학을 깊이 공부했으면서도 성리학에서 얻기 어려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나누는 삶을 실천했다”고 평가했다. 또 일부 전문가는 400년 전에 비해 많은 것이 풍족해졌지만 오히려 나누는 마음이 부족해 궁핍한 현 세태를 장계향을 통해 돌아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아카데미를 마련한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은 최근 그의 삶을 다룬 ‘장계향, 깨달은 조선 여성’을 펴냈다. 340여 쪽의 이 책에는 ‘사람은 누구나 선을 향해 나아간다’ 등 18가지 주제 속에 그의 삶이 녹아 있다. 강의마다 참석하는 한재숙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은 “당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많은 한계가 있었음에도 차분하게 시대를 앞서나간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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