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이상한 마음을 먹으면 가족들은 더 힘들어. 당신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을 생각해야지. 나 봐. 나도 죽다 살아났잖아. 암? 그거 맘만 먹으면 다 이길 수 있는 병이여.”
이호칠 할아버지(78)는 암 환자들의 발을 자기 것처럼 어루만지며 늘 이렇게 말한다. 매주 한 번씩 마사지사로 변신하는 이 할아버지는 반중환(85), 용관식 할아버지(77)와 함께 ‘구로 발마사지 삼총사’로 불린다. 서울 구로구 자원봉사센터가 2003년부터 꾸려 나가고 있는 발마사지 봉사단원으로 활동 중인 이들은 매주 금요일 1, 2시간씩 구로노인종합복지관 노인들의 발을 정성껏 마사지해 주고 있다. 복지관을 주로 찾는 어르신들이 주로 60, 70대인 만큼 동생뻘 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셈이다.
○ 발이 아니라 마음을 마사지한다
“내가 사회에서 받은 게 있으니 나도 사회에 뭔가 돌려줘야 하지 않겠어.” 어떻게 마사지를 시작하게 됐느냐고 운을 떼자 이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카투사로 복무하던 이 할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군이 주는 훈장을 받았다. 전역 후에도 서울 중구 을지로5가에 있던 미 극동공병단에 취직해 34년을 내리 근무했다. “같이 일하던 이들이 많이 나갔는데 나는 계속 일하게 해주더라고. 참전용사라고 대우해 줬던 것 같아.” 이 할아버지는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한 것이 주위 사람들의 배려 덕분이라고 여겼다.
30년 전에는 죽을 고비도 넘겼다. 배가 자꾸만 부풀어 올라 병원에 갔는데 간암이라고 했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복수를 빼냈다. “그때 난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살아났어. 의사들도 모두 놀랐지. 다들 기적이라고 했으니까.” 이 할아버지는 기적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했고, 이때부터 남에게 베풀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할아버지가 봉사 활동에 나선 지는 벌써 6년째. 심장병을 앓으며 20년 넘게 누워 있는 아내의 병 수발을 들다 보니 간병에 자신이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경기 안양시 메트로병원에도 매주 한 번씩 찾아가 말기 암 환자들을 돕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구로구 일대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먹을 도시락을 나르는 것도 그의 몫이다.
○ 젊은이들보다 힘은 없지만…
발 마사지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의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힘을 많이 줘야 했고, 끝나고 나면 어깨가 욱신거렸다. 그러나 발마사지를 하는 동안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자식들 걱정을 함께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용 할아버지는 “발을 마사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마사지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 마사지할 때마다 친구가 느는 것 같아 참 든든해”라며 미소를 지었다. 반 할아버지도 “병을 앓고 있는 아내한테 마사지를 해줬는데 몸이 좋아지더라고. 그러면 다른 노인들한테도 좋은 거잖아. 그래서 하게 됐어”라고 말했다.
이들 삼총사의 봉사활동 시간을 합치면 7618시간에 달한다. 최영미 구로구 자원봉사기획팀장은 “적적한 노인들의 든든한 벗이 돼주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는 게 복지관 측의 설명. 구로구 자원봉사센터 발마사지 봉사자 가운데 60세 이상은 15명이다. 최 팀장은 “힘이야 젊은이들이 좋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노인들은 봉사를 꾸준히 하려는 분이 많다”며 “이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데 의의를 두기 때문에 젊은이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패기도 넘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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