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前회장 1심서 징역 3년6개월 벌금 300억 선고

  • 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3분


“현금뇌물 엄벌”… 진술 일관성에 줄줄이 유죄
■ 박연차게이트 1심 선고 결과
피고인들 혐의 강력 부인에도
법원 “진술 신빙성 있다” 판단
검찰 기소내용 대부분 인정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64·사진)에게 16일 실형이 선고됐다. 또 박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사건 관련자 9명에게도 이날 모두 유죄가 선고됨에 따라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법원의 1심 판단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이번 판결은 물증이 확실치 않은 ‘현금 뇌물 사건’에 대해 뇌물 제공자의 진술이 믿을 만하면 엄벌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아직 선고가 이뤄지지 않은 다른 정관계 인사의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적극적 뇌물 공여자도 엄벌 불가피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들어선 박 전 회장은 1심 재판장인 형사합의23부 홍승면 부장판사가 징역 3년 6개월에 벌금 300억 원을 선고하자 충격을 받은 듯 고개를 숙였다. 포탈 세금 900억여 원을 이미 납부한 데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에 비하면 비교적 무거운 형량이기 때문이다. 홍 부장판사는 이를 감안한 듯 “뇌물 공여자의 협조 없이는 부정부패 사건이 제대로 수사될 수 없음을 감안해 뇌물 공여자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관행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뇌물 공여자가 적극적으로 금품을 건넸고 공여 액수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했을 때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종증권 인수 청탁과 함께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50억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형진 전 세종증권 회장에게 이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뇌물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정 전 회장은 추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고, 이날 징역 10년에 추징금 78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박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최철국 민주당 국회의원, 이상철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종로 부산고검 검사 등에게도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벌금 700만 원이 선고된 최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의원직을 박탈하도록 한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이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기소된 22명 가운데 현재까지 16명에게 모두 유죄 판결이 났으며, 나머지 6명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연차의 일관된 진술…검찰 “공소 유지 성공”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계좌 추적이 불가능한 현금이나 달러화, 상품권 등의 금품을 받았기 때문에 박 전 회장의 진술만 흔들리면 무죄 선고도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전 회장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검찰은 수사 초기에 박 전 회장에게 “태광실업을 살리려면 이번 기회에 그동안 잘못됐던 뇌물 관행을 모두 털고 가라”며 설득했고, 박 전 회장은 결국 입을 열었다. 재판 과정에서는 돈 봉투를 상대방의 양복 웃옷 주머니에 넣는 상황까지 재연하며 구체적 증언을 이어갔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 10여 차례의 증인 진술 때도 일관성을 잃은 적이 없다”며 “검찰이 공소 유지를 잘한 사례”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진술 외에 피고인들의 통화 기록, 박 전 회장 여비서의 다이어리, 주변 증언 등의 증거도 감안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법원이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를 둠에 따라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온 박진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광재 서갑원 민주당 국회의원 등 나머지 관련자들의 재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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