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 군(가명·12)은 유치원 시절부터 유명한 개구쟁이였다. 다들 활발하고 적극적인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부모가 오랜 불화 끝에 이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더 산만해졌다. 수업에 집중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계속 엉뚱한 혼잣말을 하거나 눈을 자주 깜박이는 ‘틱 장애’까지 나타났다. 스트레스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생긴 것. 지훈이가 결국 찾아간 곳은 송파구 장지동 ‘아이존’. 이혼 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 환경적 영향으로 정서행동장애를 앓는 아동을 치료하고 연구하기 위한 국내 최초의 공공시설이다.
1년반 상담-치료 받은 지훈이
학교 돌아간 첫해 반에서 2등
○ 소아정서장애 잡는다
“오늘도 모여서 너무 기뻐요, 얼굴엔 웃음 마음엔 기쁨∼.” 11일 오후 찾은 송파 아이존에선 ADHD 아동과 탈북 과정에서 엄마를 잃어 감정 표현에 장애가 생긴 아이, 공격성이 짙은 아이 등 7명이 교사들과 손잡고 노래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노경란 송파아이존 센터장은 “찾아오는 아이들 중 80% 이상이 가정환경이 원인”이라며 “가족과 같은 공동체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환경 치료”라고 설명했다. 일부 아이들은 노래를 하다가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 소파에 드러눕기도 했지만 결국 노래는 끝까지 이어졌다.
노래를 마친 아이들은 각각 흩어져 일대일 상담 및 치료를 받았다. 정서적으로 억눌린 아이들은 모래나 장난감 등을 이용해 분노나 기쁨 등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 팀워크를 강조하는 게임이나 학습 등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1년 반 동안의 사회성 훈련 및 놀이치료 끝에 학교로 돌아간 지훈이도 첫 학기에 반에서 2등을 했다.
서울시는 2005년 서울시소아청소년정신보건센터에서 시내 초중고교생 2672명을 조사한 결과 26%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2006년 9월 국내 유일의 아동정신건강 이용 시설인 아이존을 만들었다. 소아 청소년기의 정서행동장애를 방치하면 비행이나 약물중독, 정신질환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70% 이상이므로 공공시설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었다.
서울 초중고교생 26% 정서장애
병원-복지관 등 연계치료 절실
○ 지역 사회와의 연계 필요
사업 4년째인 올해는 송파 외에 노원 양천 동작구 등에도 아이존이 새로 생겼다. 지역별로 소아우울증 환자와 성적은 우수하지만 도벽 증세가 있는 아동, 교통카드 등 특정 물건에만 집착하는 아동 등 정서장애아 60여 명이 방과 후 아이존에서 치료를 받는다. 월 이용료는 4만7400원. 다만 학교나 정신보건센터, 정신과 전문의 등이 의뢰한 아이들 중 실제 장애가 있는 것으로 진단된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다.
아이존이 이달 내놓은 ‘3개년 사업보고서’에선 의미 있는 치료 성과가 드러났다. 치료를 마친 아이 부모 29명을 대상으로 ‘아동 청소년 행동평가척도(K-CBCL)’ 검사를 한 결과 총 문제행동 평균점수가 입소 전 61.90점에서 57.07점으로 떨어진 것. 국제적 평가척도인 K-CBCL에 따르면 65점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주의집중력은 평균 7.95점이 개선됐고 우울 및 불안 증세도 평균 4.79점이 나아졌다.
아이존의 향후 목표는 지역 사회와의 긴밀한 연계다. 아직까지는 지역 내 소아정신과 병원이나 보건소, 복지관과의 연계가 부족한 편이다. 기관마다 소속이 다른 데다 서로 중복되는 업무가 많다 보니 협력보다는 경쟁 관계가 될 때가 많기 때문. 허세기 아이존 행정지원팀장은 “아동에게 최대한 질 높은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기관 간 업무를 분배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조율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02-2144-1142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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