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저도 지금 꾹 참고 있다구요!”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1분


10대 자녀를 둔 부모는 ‘내가 엄마(아빠)니까 참고 살지’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자녀의 짜증 섞인 말투, 반항적인 행동을 참느라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인내는 부모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양이다. 10대 자녀들은 또 그들대로 “부모가 주는 스트레스를 꾹 참고 견뎌내는 중”이라고 항변한다. 서울의 중학생 4인에게 “아빠, 엄마! 제발 그만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 “진로 문제로 부담주지 마세요”

어느 날 저녁, 고3인 누나와 마주 앉아 수시모집 때 지원할 대학을 고르고 있던 아빠가 갑자기 “너도 와서 이거 좀 봐”라며 나를 불렀다. “내가 그걸 왜 봐. 봐도 모르는데”라고 했지만 아빠는 “오라면 오는 거지”라고 했다. 버티던 나는 아빠가 점점 더 언성을 높이시기에 마지못해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내게 대뜸 경찰대 홍보자료를 내밀었다.

그만 짜증이 나서 나는 “아빠, 나 아직 장래희망도 못 정했어”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빠가 미간을 찌푸렸다. “넌 아직 진로도 안 정했니?” 하는 목소리에는 나를 한심해하는 느낌이 실려 있었다. 예전에는 아빠가 “너 진로 좀 정했니?”라고 물을 때마다 “의사하려고요”라고 말하고 대충 넘어갔었다. 어른들이 원하는 직업을 대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다.

아빠는 신문을 보다가 특목고 관련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읽어보라고 갖다 주기도 하신다. 하지만 안 읽어보고 책상 위에 올려만 둔다. ‘어차피 가지도 못할 거 읽어보면 뭐해’라는 생각이 든다.-정모 군(중3)-

○ “잠깐 쉴 때는 ‘공부하라’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주 5일짜리 종합학원에 다닌다. 학원수업이 끝나고 귀가하면 오후 9시 20분이다. 피곤하고 지쳤을 때 TV와 컴퓨터 이외에 달리 갖고 놀 게 있겠는가.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를 보거나 컴퓨터로 연예계 뉴스를 검색하는 일이 나의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이마저도 눈치를 살피며 하게 됐다. 엄마, 아빠가 “얼른 끄고 공부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휴식시간은 길어야 1시간인데 그 잠깐의 휴식시간도 안 주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컴퓨터 때문에 아빠와 크게 다퉜다. 컴퓨터로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내 방에 들어오셔서 “그거 할 시간에 책 한 자라도 더 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짜증이 나서 일부러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컴퓨터를 완전히 끌 때까지 내 방에 대여섯 번은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결국 아빠가 “컴퓨터 끄라니까∼”라고 큰 소리를 지르고야 상황이 종료됐다. 싸늘해진 분위기는 2∼3일을 더 갔다. -유모 양(중3)-

○ “동생한테 져주란 말은 하지 마세요”

나한테는 초등학교 3학년인 여동생이 있다. 예전에는 말도 곧잘 듣던 여동생이 올해 반항기를 맞았다. 말대꾸가 심하고 많이 까불기도 한다. 가끔 내가 부탁을 하면 “내가 왜 해야 하는데?” “하면 뭐 해줄 건데?”라고 깝죽거린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엄마가 가끔 밤늦게 집에 들어오신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 대신 동생을 씻기고 재우는 역할을 맡는다. 요즘에는 이 역할이 쉽지가 않다. 씻으라고 말해도 동생이 꼭 뜸을 들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동생이 만화책을 보며 30분 동안 딴청을 피웠다. 참다못한 내가 꿀밤 한 대를 때렸는데 동생이 울어버렸다. 이제는 아예 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그때 엄마가 돌아오셨다. 동생은 어느 틈에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와서는 울면서 “언니가 나한테 소리 지르고 꿀밤 때렸어”라고 일러바쳤다. 엄마는 내게 사정을 쭉 물어보고는 “네가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라고 말했다. 그래도 결론은 평소와 똑같았다. “네가 동생한테 좀 져줘라”는 것이다.

-변모 양(중3)-

○ “비꼬듯이 말씀하지 마세요”

엄마는 가끔 비꼬듯 말할 때가 있다. 하루는 내가 언니 옷과 가방을 빌려 입고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블라우스에 스키니 진을 입고 약간 높은 힐을 신어 멋을 부렸다. 그런데 그 옷차림을 본 엄마는 대뜸 “너 회사 나가니?”라고 말했다. 비뚤게 45도 각도로 서서 팔짱까지 낀 엄마의 모습이 나를 영 못마땅해 하는 듯 보였다. 나는 기분이 확 나빠졌다. 물론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대학생 언니 옷을 입었으니 늙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말투는 기분이 나빴다.

솔직히 말해 내가 공부를 못하기는 한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놀리듯이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야, 양가양가미∼”라고 부른다. 그럴 때면 대꾸도 안 하고 엄마를 째려본다. 사실이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마음은 정말 언짢다.

하지만 엄마랑 다투는 일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엄마와 한 번 싸우고 나면 똑같은 일로 싸우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게 된다. 다투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엄마와 안 싸우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정말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다 아는 사이가 되어 있지 않을까?-방모 양(중2)-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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