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씨(49)의 집은 ‘작은 도서관’이다. 거실, 안방, 작은 방까지 책장이 빼곡히 들어찼고 두 아들이 보는 책만 1만4000여 권이다. 이 중 거실을 차지한 건 백과사전 10여 질. 아이들은 백과사전을 읽고 관심 있는 분야의 단행본을 사 모았다. 집안에 있는 모든 책이 백과사전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모은 백과사전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덕분에 태어나서 지금껏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는 형제는 늘 전교 최상위권이다. 형 푸른산빛 군(경기 파주시 봉일천중학교 1)은 반 1등, 전교 7등을 하고 학교 수학, 과학 영재반에 들어있다. 문제집 한 장 안 푼다는 동생 옥빛햇살 군(경기 파주시 능안초등학교 5)도 반 1등, 전교 1등을 도맡아 한다. 형제는 “백과사전에서 읽어 미리 알고 있는 것을 수업시간에 배우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아버지 임 씨에게 ‘백과사전으로 자녀와 노는 법’을 전수받아보자.》
│거실바닥에 시장 좌판처럼 백과사전을 깔아놓아라
백과사전은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펼쳐서 거실 바닥에 깔아놓는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왔다 갔다 하면서 백과사전을 밟고 보게 하며 책과 친해질 시간을 준다. 시각자료들이 풍부한 백과사전은 책장에 꽂아놓는 것보다 바닥에 펼쳐놓는 편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텔레비전을 보다 생긴 궁금증을 백과사전에서 해결하라
“아빠, 말벌에 쏘인다고 사람이 죽어?”
“응. 그런가봐. 말벌이 얼마나 위험한지 백과사전에서 같이 찾아볼까?”
오후 9시 온 가족이 TV 프로그램 ‘위기탈출 넘버원’을 보다 나온 대화다. 두 아들은 과학,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서 평소 ‘스펀지’, ‘환경스페셜’, ‘위기탈출 넘버원’, ‘세상에 이런 일이’, ‘세계테마기행’,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 TV를 보다 궁금증이 생기면 거실 책장에 꽂아둔 백과사전에서 곧바로 찾아본다.
│아이가 관심 갖는 분야는 단행본과 연결시켜라
백과사전은 자녀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지 확인하는 ‘창’이 될 수도 있다. 아이는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으면 그 부분만 반복해서 본다.
큰 아들은 공룡, 무기와 갑옷,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작은 아들은 자동차, 인체, 요리, 보석에 관심이 많았다. 임 씨는 공룡 그림을 자주 그리는 큰 아들에게 공룡 도감을 사줬다. 백과사전 안에도 공룡과 관련된 설명이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아서 분야별 도감을 사주는 것으로 지적 호기심을 확장시킨 것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둘째 아들에게는 치밀한 사전조사로 조리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일본의 요리 만화책을 많이 사줬다. 100권 내외인 ‘아빠는 요리사’, ‘맛의 달인’, 20권이 넘는 ‘신의 물방울’, ‘라면요리왕’ 등의 만화책을 아이와 함께 읽었다. 아이는 만화책을 보고 나서 일본,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상상놀이를 하며 지식분류체계를 가르쳐라
스무고개와 비슷한 ‘상상놀이’라는 것도 개발했다. 먼저 아빠가 특정 대상을 떠올린 다음 아이들에게 “자, 생각했어”라고 말한다. 만약 답이 공룡이라면 아이들은 “백악기 시대 공룡이에요, 쥐라기 시대 공룡이에요?”, “육식 공룡이에요, 초식 공룡이에요?”, “머리에 뿔이 있어요?” 등의 질문을 차례로 던진다. 질문은 큰 분류에서 작은 분류로 점점 내려간다. 상상놀이를 하다 보면 백과사전에 나온 지식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잠자리에서 릴레이로 이야기를 창작하라
잠들기 전 아이와 릴레이로 이야기를 지어낸다. 아빠가 먼저 “어느 날 티라노사우루스가 배가 고파서 숲 속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어”라고 운을 떼면 큰 아들이 “티라노사우루스는 저편 바위 옆에서 작은 동물 한 마리를 발견했어”라고 받아치고, 둘째가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창의력이 풍부해지는 놀이다.
│아이의 관심을 자료화, 작품화하라
큰 아들은 백과사전이나 단행본을 읽고 나서 A4 용지에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어 공룡 도감을 읽고 나서 여러 공룡들의 장점만 두루 뽑아내 새로운 공룡을 그리는 식이었다. 임 씨는 거실에 낚싯줄을 길게 걸고 아들이 그린 그림을 건 다음 주기적으로 교체해줬다. 자동차 등 탈 것을 좋아하는 둘째 아들은 비행기, 탱크, 항공모함, 헬리콥터 등의 모형을 조립했다. 완성된 작품은 거실 텔레비전 옆에 전시했다. 임 씨는 아이들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유아교육 사이트인 푸름이닷컴에 올리고 아이들에게 댓글을 보여줬다. 아빠가 자신과 자신이 만든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인정해준다는 걸 알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렇게 6년째 모은 작품들만 서너 박스. 임 씨는 “입학사정관 전형을 생각하고 모아온 건 아니지만 좋은 포트폴리오는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마인드맵 같은 개념 연관… 몰입영어학습에도 그만…
보물창고 백과사전 알고 쓰면 ‘척척박사’▼
책장에 꽂힌 모습은 근사하지만 어찌 사용해야할지 모를 백과사전. 어떻게 활용할까.
①통합교과학습=백과사전은 개념의 연관관계를 마인드맵처럼 펼쳐 보여주므로 한 가지 개념을 통해 여러 교과목을 공부하는 효과가 난다. ‘자동차’의 경우 △근대의 발명품(역사) △디자인의 대상(미술) △기계화된 제조공정(과학) 등으로 접근.
②몰입영어학습=영문 백과사전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영어로 공부할 수 있다. 국제중, 특목고, 해외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분야별 어휘와 배경지식을 쌓아 토플 고득점을 노릴 수도.
③창의사고력학습=자녀 관심사에 따라 ‘한반도에서 삼국통일이 이뤄진 때에 유럽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기’ ‘박물관에서 체험한 정보를 조합해 나만의 공룡 백과사전을 만들기’ 등 사고와 학습의 확장을 꾀한다.
도움말: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회사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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