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 공립고, 인성교육으로 학구파 만든다

  • 입력 2009년 9월 23일 03시 00분


2014년까지 150개교 육성… 어떤 점이 좋은가?

《“입학한 뒤에 스스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해준 학교입니다.” 서울 구로공단 뒷골목에서 ‘비행 청소년’으로 이름을 날렸던 A 군(16)은 자신이 다니는 서울 구현고를 이렇게 소개했다. A 군은 뒷골목 친구 9명과 함께 지난해 개방형 자율학교인 구현고에 입학했다. 2007년 3월 처음 생겨난 개방형 자율학교는 혁신 의지가 강한 교장에게 학교 운영권을 넘겨 교육과정과 학습방법을 자율적으로 꾸려나가는 학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런 학교에 연간 1억 원씩을 지원하며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해 왔다. A 군은 입학 당시 구현고를 ‘맘대로 머리 기르고 교복도 입지 않는 학교’로 알고 친구들과 함께 입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그의 ‘기대’에서 벗어났다. 선생님들은 날마다 교문에서 두발 상태를 체크하며 친구들에게 “머리를 1주일 이내 자르겠다고 약속하라”고 말했다. 결국 A 군과 친구 중 7명은 1년 만에 모두 담배를 끊고 학구파가 됐다.》

학습의욕 상실한 ‘비행청소년’에 큰 효과
자기주도형 학습능력, 일반학교보다 높아
“입시에 희생된 학생들 구원하는 현장돼야”

교과부는 구현고와 같은 개방형 자율학교를 내년 ‘자율형 공립고’로 명칭을 바꾸고 30곳 정도를 새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또 2014년까지 자율형 공립고를 150개교 이상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자율형 공립고가 늘면 학교 선택폭도 그만큼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자율형 공립고 신입생은 입학 지원 평준화지역에서 선지원 후 추첨 방식으로, 비평준화지역에서는 각 학교가 필기고사 이외의 방법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 만족도 높은 인성교육 프로그램

구현고 교사들은 “인성 프로그램이 A 군의 변신을 도왔다”고 입을 모았다. 이 학교 교사들은 특별한 절차를 거쳐 선발됐다. 한명복 교장은 공모를 통해 이 학교에 들어왔으며 과목별 교사들은 모두 공개경쟁으로 뽑은 초빙교사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상담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다른 학교에서 보기 힘든 학습지도 의욕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방과후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방형 자율학교의 연착륙 비결로 꼽고 있다. 전북 정읍고의 B 군도 “교장선생님이 직접 지도하는 리더십트레이닝(LT) 교육, 학생 칭찬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에 대한 각오를 새로 다졌다”고 말했다.

개방형 자율학교가 운영하는 인성 교육 프로그램은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학습 의욕을 상실했거나 스스로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방과후 학교에서 진행하는 아버지와의 대화, 생활 예절 지키기, 환경보호, 사회봉사 활동은 대부분 개방형 자율학교가 채택한 프로그램이다.

인성 교육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돋우는 부수 효과도 거두고 있다. 부산남고등학교의 경우 지난해 3월 입학생의 전국연합학력평가 평균점수가 중하위권이었지만 올해 3월 2학년생의 평균점수가 중상위권으로 차츰 올라갔다.

○ 일반 공립고에도 긍정적 효과

교과부는 이달 8일 개방형 자율학교 3년 시범운영 중간평가를 발표했다. 평가 결과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될 개방형 자율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적성중심 진로 의식, 학교의 교육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일반 학교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는 “자율형 공립고는 예산을 상대적으로 적게 들이고도 좋은 성과를 내는 저비용 고효율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일반 공립고도 이 모델에서 긍정적인 프로그램을 뽑아 가고 있다. 초빙 교사 50%와 교과편성 자율권을 채택해 ‘교육과정 혁신학교’로 지정된 경복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학교 이정민 교장은 “현재 입시제도에서 뒤처진 학생들도 배려하는 맞춤형 진로지도 등을 도입해 교육 과정을 혁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특목고 등으로 유출되는 인재와 학생수 감소로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는 공립고가 하루라도 빨리 입시에서 희생된 학생들을 구원하는 현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과부는 공립고 가운데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를 우선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교과부 성삼제 학교제도기획과장은 “자율형 공립고 성공 모델이 많이 나타나면 지역에 관계없이 이 모델에서 장점을 채택하는 일반 공립고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