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작은 행정지원이 ‘큰 문화’ 살린다

  • 입력 2009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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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하면서 이곳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문예회관 미술관과 대극장 이외에 60개 정도의 중소형 소극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극장 수가 지난해 120개, 올해 150개로 늘어났다. 지금도 극장 신축이 한창이다. 2011년쯤에는 기존 소극장들을 합쳐 약 5000개의 좌석이 마련되는 명실상부한 연극, 뮤지컬 마을이 될 것이다.

대학로의 이런 사례는 재개발을 하지 않아도 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작은 행정적 지원이 문화적 가치를 실질적 가치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촌한옥마을이 문화지구로 성공을 거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옥이라는 좋은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부터 한옥 보전 문제가 이야기되면서 서울시는 그 집들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를 물었다. 한옥들을 다 헐어버리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주민들이 민박을 하겠다면 관련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정도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는 사이 많은 한옥이 헐려 없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서울시가 한옥을 한 채씩 직접 사들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건축가들이 사무실을 옮겨 들어가기 시작했고 카페나 아틀리에를 꾸미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제 북촌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옥이라는 하드웨어 위에 정책적 지원을 덧씌워 좋은 결과를 낸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서촌(西村·서울 종로구 통의동, 창성동 등 경복궁 서쪽 일대를 뜻함)에는 한옥 외에도 북촌에는 없는 ‘역사문화 콘텐츠’라는 매력이 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땅 ‘준수방’과 추사 김정희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곁들인 ‘송석원’ 터, 겸재 정선의 집터였던 ‘인곡정사’에다 순종 왕후 윤비의 생가에 이르기까지. 6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또 이상 윤동주 시인 등 문인들과 이중섭 박노수 등 화가들, 김동진 현제명 같은 음악가들이 살던 집도 있다. 최근에는 서정주 김동리를 비롯한 문인들이 장기 투숙하며 작품을 썼다는 ‘보안여관’까지 발견되는 등 문화예술과 관련한 이야기도 널려 있다.

한때 서촌 지역을 재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역사와 문화를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재개발을 원했던 주민들에게 마을 보전이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잘 알릴 필요가 있다. 또 공익사업을 위해 제한되는 개인재산권에 대한 충분한 투자와 보상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김원 (주)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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