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일본의 신주쿠 거리. 각국 언어가 적혀 있는 형형색색의 간판이 화려하다. ‘국제 도시’의 이미지가 물씬하지만, 이곳에 사는 동남아시아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별이 담겨 있다. 골목 곳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4, 5개국 언어로 써 있다. 실제 쓰레기를 불법으로 버리는 사람 10명 중 6명이 일본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말이다.
대개의 노동 이주는 일반적으로 가난한 국가에서 부유한 국가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주 근로자는 원주민들의 편견과 중개인에 의한 착취, 저임금, 열악한 근로조건, 경제적 소외, 공공서비스 접근 제한 등의 문제에 취약하다. 이런 문제에 부닥치면 언어 구사 능력이 불완전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이는 이민의 역사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 모니터링-법적 조치로 이민자 인권 보호
오랜 이민 역사를 지닌 유럽의 경우 사회 결속뿐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이주민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유럽연합(EU)은 1997년 ‘유럽 인종주의 및 외국인 혐오 모니터링 센터(EUMC·European Monitoring Centre on Racism and Xenophobia)’라는 특별 기관을 설립했다. EUMC는 각 회원국 전문가 및 연구센터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회원국 내 이주자와 소수집단이 처한 주거 불안, 차별 등의 이슈에 대해 모니터링하면서 연례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한다.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 주변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무굴 히라 씨(44)는 “20년 전만 해도 길에서 백인들이 시비를 걸고 외국인과 백인 갱 간에 싸움도 많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이 많아진 데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범죄로 신고할 수 있기 때문에 차별을 그렇게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UMC는 2007년 ‘기본권 기구(FRA·Fundamental Rights Agency)’에 흡수 통합돼 기존 역할 이외에도 성별, 종교나 신념, 장애, 연령, 성(性)적 지향성에 대한 차별 이슈도 함께 다룬다.
이민자 중 가장 취약한 계층은 난민과 망명자다. 이들은 불법 브로커의 덫에 걸릴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이에 영국 정부는 2001년 ‘이민서비스 대행기관(OISC·Office of the Immigration Services Commissioner)’을 만들었다. OISC는 브로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자격을 갖춘 ‘이민자문가’ 직종을 만들고 난민과 망명자들에게 이들과 접촉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불법적 이민자문가에 대해서는 기소권도 가지고 있다. 수전 매커시 OISC 대표는 “불법 이민자문가가 난민과 망명자들의 삶을 망치고 있다”며 “적발될 경우 6∼9개월의 징역, 혹은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진다”고 말했다.
○ 문화 교류와 교육으로 관계 증진 노력
이민자와 원주민의 대화를 통해 이해와 관용을 촉진하려는 다양한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EU는 2008년을 ‘유럽 문화 간 대화의 해(European Year of Intercultural Dialogue)’로 정하고 ‘다양성 속에서 함께(Together in Diversity)’라는 슬로건 아래 사진 콘테스트, 아트 페스티벌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1990년대 초반 ‘다문화 공생’이라는 슬로건을 정하고 2001년 5월에는 ‘외국인집주도시(集住都市)회의’를 설립했다. ‘외국인집주도시회의’는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방정부와 국제교류협회가 주최가 된 것으로, 현재 27개 도시가 회원이다. 이들은 2001년 총무성, 법무성 등 다문화 관련 중앙부처에 외국인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긴급 하마마쓰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2008년에는 이주민의 일본어 교육기회 보장 및 이주민 정책 전담 부서 설치 등을 중앙정부에 요구하는 ‘미노카모(美濃加茂) 도시 선언’을 발표했다.
○ 끝나지 않은 숙제
이민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해서 모범 답안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9·11테러 이후 유럽에서는 외국인, 특히 무슬림을 보는 시선이 사나워졌고 세계 경제위기로 실업이 증가하는 현 상황에서는 외국인 혐오와 극우 성향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2007년 런던 테러 이후 행인을 대상으로 무작위 검문(Stop and Search)을 강화했는데, 런던 테러 발생 이전보다 흑인 대상 검문이 322%, 아시아인 대상 검문이 277% 증가하는 등 백인(185%)에 비해 현저히 높아져 인종 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또 유럽 국가에서 강화되는 동화주의적 접근법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북아일랜드의 인권기구 HRTEC(Human Right Training and Evaluation Consultancy)의 키아란 오 마오레인 이사는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다문화사회에서 이주자 권리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럽이 거둔 성과의 상당 부분이 경제위기로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다”며 “이주자와 소수집단, 기타 취약 집단 권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여전히 무겁고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런던=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도쿄=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국내 사정은 어떤가
다문화가족 자녀 10만명… ‘차별 대물림’ 걱정
이렇듯 상당수 다문화가족은 언어와 문화 차이,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법적으로 한국인이 되어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실패하면 늘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다문화가족 자녀가 지난해 5만8000명에서 올해 10만3000명으로 급증하면서 차별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발달 단계에 따라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어 성인이 되어서도 한국 사회의 비주류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보호에 주력했던 초기와 달리 다문화가족의 사회 통합을 돕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지난해 11월 법무부 다문화가족 실태 조사에서 결혼이민자들은 한국어를 못해서 불편했던 점으로 ‘공공기관에서 업무 볼 때’(33.3%), ‘가족과의 의사소통’(28.7%), ‘자녀 훈육 및 숙제 지도할 때’(15.9%) 등을 꼽았다. 언어 장벽은 가족간 불화를 일으키고 한국 사회에 통합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전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 100여 곳에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통·번역 서비스를 이용한 다문화가족은 5760가구. 한국어교육 지도사 960명가량이 파견되어 부모들이 자녀의 학교 방문할 때 동행해 선생님과의 상담을 도왔다.
다문화가족은 도시보다 농촌에 많이 거주한다. 장거리 외출을 해야 하지만 버스 타는 법, 돈 세는 법도 능숙하지 못해 사실상 혼자서 외출이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녀들 역시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외톨이로 지내기 쉽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자녀들의 정상적인 교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자녀 보육·교육을 돕는 양육지도사 방문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보육시설에도 한국어 교육 지도사가 파견되어 한국어 교육을 지원한다.
이민원 보건복지가족부 다문화가족과장은 “국제결혼 건수는 전체의 10%를 상회하고 있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가족 형태가 될 것”이라며 “이제는 다문화가족의 한국 사회 통합을 돕는 정책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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