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받는 장소만 달랐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9월 23일 03시 06분



성매매특별法 5년… 다시 집창촌으로 돌아온 어느 여성의 고백
네일아트 등 기술 배웠지만 수입 적고 힘들어 결국 포기

전업 지원책도 도움안돼,흩어진 동료들 같은일 계속


이곳에선 그날을 짧게 줄여 ‘9·23’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9·11테러’에 빗대 ‘9·23테러’라고도 한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인형처럼 긴 속눈썹을 붙이고 화장을 고치던 김영은(가명·28)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탄부터 쏟아냈다.
“요즘 재수가 좋은 날은 하루에 다섯 명도 받지만 단속이 뜬다는 날에는 아예 손님이 없어 김이 샌다고요….” 김 씨는 하룻밤에 평균 서너 명의 손님을 받고 한 달에 400만 원 정도를 손에 쥔다. 화대는 7만 원으로 이 중 절반이 그의 몫이다.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 9월 23일 이전만 해도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지금은 먼 곳에서 발짝 소리만 들려도 손님을 모시러 뛰어나간다. 21일 밤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속칭 ‘천호동 텍사스’에서 만난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은 어디론가 휴대전화를 걸거나 오랫동안 거울만 쳐다보며 멍하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는 2002년 스물한 살 때 천호동 텍사스를 처음 찾았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며 서울에 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만난 한 언니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1, 2년만 눈 딱 감고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어둠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제법 큰돈을 만지기도 했지만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김 씨는 천호동 텍사스를 떠났다. “아예 다른 일을 시작해볼 생각도 했지만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집창촌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장소만 다른 곳에서 여전히 성매매를 하고 있어요.”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처음에는 다른 일을 해보겠다며 네일아트를 배웠다. 자격증도 땄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이전처럼 생활할 수 없었다. 한 달에 100만 원 남짓한 돈으로는 원룸 월세 40만 원 내고 나면 공과금 내기도 빠듯했다.
결국 안마시술소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안마기술을 배우는 데 30만 원씩 업소에 내야 하는 데다 일도 훨씬 힘들어 그만뒀다. 출장식 ‘보도방’도 나갔지만 무리한 요구를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손님이 많아 한 달도 채우지 못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룸살롱, 안마시술소뿐 아니라 한 건물에서 술도 마시고 2차도 가능한 풀살롱이나 오피스텔 등 변종 성매매업소로 뿔뿔이 흩어졌다. “강남만 가 봐도 요즘 얼마나 희한한 데가 많아요. 간호사 옷 입혀놓고 하는 데도 있고, 아가씨들을 유리벽 안에 넣어놓고 고르는 데도 있어요.” 이런 곳들은 집창촌과 달리 관리도 제대로 안 된다. “이제 음지가 많아져서 관리도 잘 안 되고 몇 명이 일하는지 아무도 몰라요. 강남 풀살롱처럼 100명이 넘는 여자들을 두고 기업형으로 장사를 하는 곳도 많잖아요.”
김 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집창촌을 떠나면 6개월간 여성부에서 주는 지원금이 있어요. 아예 다른 길을 찾으라고 월 40만 원 정도의 생활비 쥐여주는 건데, 누가 일을 그만두나요. 여기는 그만둔 것으로 하고 안마시술소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지원금 타내는 아가씨도 많아요.” 이곳에 살던 여성들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도 무용지물이라고 귀띔했다.
결국 김 씨는 올해 6월 다시 천호동 텍사스로 돌아왔다. 다른 곳에 비해 차라리 안전하고 편하다는 생각에서였지만 2004년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떤 손님들은 단속 위험을 감수하고 찾아왔는데 특별한 서비스를 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한단다.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며 돈을 내지 않고 오히려 돈을 얹어 달라며 배짱을 부리는 손님도 생겼다.
“여기 있는 애들 다 빚쟁이, 전과자 만든 게 ‘9·23’이야.” 방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업소 사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천호동 텍사스촌에서만 10년째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그가 가까이 보이는 오피스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특별법 만들었다고 성매매가 줄었느냐고? 여기 있던 애들 다 저런 데 가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 우리 애들은 그래도 한 달에 세 번은 보건소에 가서 피검사도 하고 소변검사도 하는데 우리만 죽게 생겼어.”
“어머, 잠깐만.” 술에 취해 눈이 풀린 20대 남성 두 명이 가게 문을 열었다가 금세 뒤돌아 골목으로 사라지자 김 씨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업소 사장도 인상을 찡그렸다. “기자 양반, 안 그래도 장사 안 되는데 이제 그만 방해하고 빨리 가요.”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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