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이나 진 후에는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 경찰서장이 이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4일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0조와 이를 어겼을 경우 벌칙을 규정한 23조에 대해 재판관 5(위헌) 대 2(헌법불합치) 대 2(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같은 조항에 대해 1994년 “집회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필수불가결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던 기존 입장을 15년 만에 바꾼 것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을 2010년 6월 30일까지 국회가 개정토록 했으며 개정 전까지는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개정시한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조항들은 자동으로 효력을 잃게 된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국민의 주거 및 사생활의 평온, 사회의 공공질서 보호를 위해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식의 시간제한은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시간대의 옥외집회를 금지한 것은 직장인, 학생 등은 사실상 집회를 주최하거나 참가할 수 없도록 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강국 이공헌 조대현 김종대 송두환 재판관은 “야간 옥외집회에 대해 관할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과 집회에 대한 허가금지를 규정한 헌법 21조 2항에 정면으로 위반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김희옥 이동흡 재판관은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중립적인 시간적 기준에 의한 사전적 제한이므로 헌법상 집회의 자유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법원 “재판에 어떻게 반영할지 논의”
경찰 “시위해산 법근거 약해져 난감”▼
검찰은 헌재가 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는 이 조항을 적용하도록 한 만큼 현재 해당 조항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는 사안은 공소취소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 법 개정 이전에 해당 조항 위반 사례가 나타나면 기존 법을 적용해 기소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각계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관련 조항의 개정작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면서도 “다만 개정 전까지는 유효하므로 개정 때까지는 현행법을 준수해 달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이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조항을 적용해 기소할 경우 법원에서 유죄를 받아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또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에 대응하면서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집회 불허나 강제해산의 근거로 삼았던 경찰로서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법원은 현재 진행되는 재판의 처리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헌재가 한시적 법 적용을 명령한 만큼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실상 위헌 결정으로 보고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헌재 결정을 재판에 어떻게 적용할지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판사 이민영)가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서도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해둔 상태라는 점을 들어 헌재의 결정이 날 때까지 선고를 미룰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와 관련해 기소된 175명의 재판이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 위헌 제청 이후 중단됐는데 이 중 154명이 일반교통방해죄 위반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이 당장 재판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간 옥외집회 금지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913명 가운데 이 조항만으로 기소된 사람은 35명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형량이 더 높은 특수공무집행방해나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가 적용돼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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