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준거에 의한 비판’을 학습한 데 이어, 이번 시간에는 ‘외적 준거에 의한 비판’을 학습한다. 비판의 근거가 지문 안이 아니라 지문 밖에 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있는 수험생에게 매우 유리한 영역이다. 글이 읽히는 상황과 관련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글의 가치를 평가하도록 한다.》
주어진 글을 비판할 때에는 언어 사용의 외적, 상황적 국면과 관련하여 그 타당성과 효용성을 기준으로 하는 외적 준거가 적용될 수 있다.
타당성에 의한 비판은 크게 관점의 상식성과 내용의 보편성으로 나눌 수 있다. 관점의 상식성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이나 건전한 윤리성 등을 글에 대한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글에 담긴 사실이 보편적 진리에 비추어 옳은가를 판단하기 위해 글쓴이의 생각이 수용 가능한 것인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거나 편견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를 살펴본다. 내용의 보편성은 글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글쓴이의 생각이 인간의 본성이나 인생의 진리를 추구하는지, 두루 수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판단한다.
효용성에 의한 비판은 글이 쓰이고 읽히는 사회적·시대적 배경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실용성과 심미성으로 나뉜다. 실용성은 어떤 사고나 표현이 우리의 삶에 지혜를 제공하는지, 일상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심미성은 언어가 지닌 미적 요소를 바탕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지, 어떤 교훈적이고 정서적인 효과를 주는지를 판단한다.
한 마디로 타당성에 의한 비판은 글이 외부 세계의 객관적인 기준에 합당한가를 가리킨다. 또 효용성에 의한 비판은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고려하여 글의 가치를 따진다. 따라서 타당성에 의한 비판은 주로 글쓴이나 대상과 관련되고, 효용성에 의한 비판은 주로 독자와 관련되어 검증된다. 문학 작품의 이해와 연관시켜 보면 전자는 표현론과 반영론의 관점, 후자는 효용론의 관점으로 이해된다.
<예문>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9월 모의평가 45번 지문
작품과 수용자 사이의 경계를 넘어 작품의 생성과 전개에 수용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작품과 수용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분명히 종래의 예술관에 대한 도전이다. 종래의 예술관은 수용자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술감상을 미적 관조로 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은 예술 이외의 모든 관심과 욕구로부터 초연한 상태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관조적 태도와 함께 예술 작품 자체도 모든 것에서 벗어난 순수한 객체가 됨으로써 이제 예술은 그 어떤 권위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율적 영역이 된다. 이 때문에 종종 예술은 쓸모없는 것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현실의 모든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방공간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근의 예술적 시도들이 예술을 상호작용 공간으로 만들 경우 미적 해방공간마저 일상적 삶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예술 이외의 관심과 욕구로 얼룩지고 마는 것인가? 넓게 보자면 인간은 세상과의 상호작용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이란 세상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상호작용이 내적 외적 요인으로 인해 긴장과 갈등을 낳을 때, 인간의 경험은 대립과 분열에 빠지며 이것이 지속될 때 삶은 위기를 맞는다. 반면, 각각의 상호작용의 고유성이 보호되면서 이것이 하나의 전체 속에서 통일될 때 인간의 삶은 극치를 이룬다. 존 듀이는 이러한 통일성에 대한 체험을 미적 체험으로 간주한다. 물론 이러한 미적 체험은 현실적 삶에서 실현되기 어렵다. 오히려 이것은 예술 작품 속에서 상이한 요소, 행동, 사건, 주체들이 고유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통일성을 이룰 때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듀이는 예술의 신성화가 아니라, 예술의 세속화를 원한다. 대립되고 분열된 일상의 수많은 상호 관계와 경험들은 이 세상 속에서 미적 체험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상호 작용을 강조하는 예술적 시도가 이러한 미적 체험을 실험하고 연습하는 장을 만든다면 이는 예술 작품을 넘어 삶 속에서도 미적 체험을 성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45. <보기>의 입장에서 ‘예술의 세속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응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 세상은 의지의 표현이며, 이 의지는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맹목적인 충동일 뿐이다. 이 충동은 하나가 만족되면 새로운 충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인간은 맹목적 충동의 사슬이 불러일으키는 불만족과 갈등에 시달린다. 미적 관조는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며, 인간은 잠시나마 이를 통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① 예술의 세속화는 자기 보존을 둘러싼 대립과 그 갈등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② 예술의 세속화는 상호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결국 예술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닐까?
③ 예술의 세속화는 역으로 예술을 인간의 맹목적 충동에 종속시킬 위험성을 갖는 것은 아닐까?
④ 예술의 세속화는 오히려 인간의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것은 아닐까?
⑤ 예술의 세속화는 미적 관조를 현실 세계로 확산시키므로 삶의 통일성에 대한 경험을 가로 막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은 작품의 생성과 전개에 수용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작품과 수용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예술적 시도에 대해 언급한다. 종래의 예술관에서는 수용자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술 감상을 미적 관조로 한정했다. 그러나 최근의 예술관에서는 작품과 수용자 각각의 고유성이 보호되면서 그것이 하나로 통일되는 미적 체험에 대한 시도가 나타난다. 존 듀이는 통일성에 대한 체험을 미적 체험으로 간주하며 ‘예술의 세속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출제된 45번 문제가 비판적 사고의 문제다. 정답부터 확인하면 ⑤번이다. 마지막 문단에서 듀이는 예술 작품을 초연하고 관조적인 상태에서 감상하는 ‘예술의 신성화’ 대신, 대립되고 분열된 일상의 수많은 상호 관계와 경험들이 이 세상 속에서 미적 체험으로 통합되는 ‘예술의 세속화’를 강조한다고 했다. ‘미적 관조(인간의 불만족과 갈등으로부터 벗어난 미적 관조)’는 현실 세계로의 통합이 아닌, ‘예술의 신성화’에 해당하고, ‘예술의 세속화’는 미적 관조를 현실 세계로 확산시키므로 삶의 통일성에 대한 경험을 부여한다. 쇼펜하우어 입장에서는 ‘예술의 세속화’가 미적 관조를 현실 세계로 확산시키기 때문에 예술과 현실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비판할 것이다.
다른 답지를 보자.
①듀이는 대립되고 분열된 일상의 수많은 상호 관계와 경험들이 이 세상 속에서 미적 체험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보기>에 따르면 이 세상은 의지의 표현이며, 이 의지는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술의 세속화는 자기 보존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고 비판할 수 있다.
②듀이는 예술의 세속화를 통해 예술이 이 세상 속에서 미적 체험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기>에서 쇼펜하우어는 미적 관조는 세상 속에서의 불만족과 갈등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해탈의 경지’를 제공하는 예술 자체가 이 세상 속에서 미적 체험으로 통합된다면 결국 이는 예술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일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다.
③<보기>에 따르면 이 세상은 의지의 표현이며, 이 의지는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맹목적인 충동일 뿐이다. 결국 예술 감상은 분열된 일상의 수많은 상호 관계와 경험들이 미적 체험으로 통합되기보다는, 인간의 맹목적인 충동에 종속되는 위험성을 갖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다.
④<보기>에서 쇼펜하우어는 미적 관조는 세상 속에서의 불만족과 갈등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길이라고 했다. 이러한 경험을 세상 속에서의 경험과 통합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현실적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길(경험)이 차단되는 게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보기>에서 제시된 비판이나 해석, 평가의 기준을 이해하고 답지와 하나씩 비교해가면서 답을 찾아가면 된다. 이렇게 외적 준거에 의한 비판적 사고의 문제는 비판의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문>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6월 모의평가 27번 지문
「백호산군이 왈,
“대개 만물의 경중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곡직을 알진대 양쪽의 말을 들음만 같음이 없나니, 한 쪽의 말만 듣고 선불선(善不善)을 가벼이 판결치 못할지라. 소진의 말로써 진나라를 배반함이 어찌 옳다 하며 장의의 말로써 진나라를 섬김이 어찌 그르다 하리오. 소장(訴狀)양쪽의 말을 같이 들은 연후에야 종횡을 쾌히 결단하리니,다람쥐는 우선 옥으로 내리고 서대쥐를 즉각 잡아 와서 상대한 연후에 가히 밝게 분변하리라.”
하고, 오소리와 너구리 두 형졸로 하여금 서대쥐를 빨리 잡아 대령하라 분부하니 두 짐승이 명을 듣고 나올새 오소리가 너구리더러 일러 왈,
“내 들으니 서대쥐 재물이 많으므로 심히 교만하매 우리 매양 괴악히 알아 벼르던 바이러니, 오늘 우리에게 걸렸는지라. 이놈을 잡아 우리를 괄시하던 일을 분풀이하고 또 소송당한 쪽 전례는 위에서도 아는 바라. 수백 냥이 아니면 결단코 놓지 말자.”
하고 둘이 서로 약속을 정하고, 호호탕탕한 기분을 발호하고 예기는 맹렬하여 바로 구궁산 팔괘동에 이르러 토굴 밖에서 소리 높여 부르며 가로되,
“서대쥐 고소를 당함에 백호산군의 명을 받아 패자(牌子)를 가지고 잡으러 왔나니 서대쥐는 빨리 나오고 지체 말라.” 독촉이 성화 같은지라.
비복들이 이 말을 듣고 혼백이 흩어져 버리는 듯 놀라서 급급히 들어가서 서대쥐께 연유를 고할새 서대쥐 호흡이 급해지고 땀이 배어 등을 적시는지라. 모든 쥐들이 이를 보고 눈을 둥글고 두 귀 발록발록하여 허둥지둥하거늘 서대쥐 왈,
“너희들은 놀라지 말라. 옛말에 일렀으되 칼이 비록 비수라도 죄 없는 사람은 해치지 못한다 하였으니 우리 본디 죄를 범한 바 없는지라 무엇이 두려우리오.”
인하여 자손과 노복쥐를 데리고 토굴 밖으로 나오니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쥐 나옴을 보고 더욱 의기양양 하는지라. 서대쥐 오소리를 보고 흔연히 웃어 가로되,
“오 별감은 그 사이 평안하셨느뇨. 나는 층암절벽 한 곳에 토굴을 의지하고 그대는 천봉만학 절승처에 산군을 모시니 유현(幽顯)*의 길이 다른지라. 마음은 항상 그윽하나 승안접사(承顔接事)*를 일차 부득하더니 오늘 관고(官故)로 말미암아 누추한 곳에 왕림하여 의외로 청안(淸眼)을 대하니 패자예차는 서서히 수작하려니와 일배 박주(薄酒)*를 잠깐 나누기를 바라노니 허락함이 어떠리오.” (하략)
- 작자 미상, ‘서동지전(鼠同知傳)’
27. 위 글을 읽고 나서 보인 학생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① 진실성 없이 겉과 속이 다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두었군.
② 관(官)의 힘에 기대어 위세를 부리는 인물을 풍자하고 있군.
③ 인정세태를 그리기 위해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기법을 사용했군.
④ 돈의 힘을 알고서 능란하게 쓸 줄 아는 인물의 처세를 보 여주고 있군.
⑤ 절차를 까다롭게 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재판 제도의 불 합리성을 비판하고 있군.」
문학의 경우는 이와 같은 문제가 외적 준거에 의한 비판적 사고에 해당한다. 제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쥐를 의인화해 표면적으로는 권선징악을 설파하고, 이면적으로는 가부장적 봉건사회를 질타한다.
문제를 풀이하면, 다람쥐의 소송을 맡게 된 백호산군은 다람쥐만이 아니라 소송을 당한 서대쥐도 불러 사정을 들은 후에 판단하겠다고 말한다. 이는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겠다는 합리적인 태도이다. 따라서 정답은 ⑤번. 제시문 전문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살펴본 외적 준거에 의한 비판 문제는 고도의 출제기술이 요구되는 까다로운 문제다. 그럼에도 상당한 변별력을 가지므로 최근 각광받는 출제 유형이다.
이런 문제를 더욱 심도 있게 접하고 싶다면 MEET/DEET(의·치의학교육입문검사)의 ‘언어추론’이나 LEET(법학적성시험)의 ‘언어이해’ 문제를 풀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단, 고등학생에겐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이만기 엑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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