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만들어 송금후“강사료 20% 올렸다” 주장
일부는 아예 장부도 없어…교육부, 입증자료 의무화
“권리금과 차명 ‘대포통장’까지 이용해 학원 수강료를 올릴 셈인가.”
교육과학기술부 학원비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김철운 팀장은 수강료 인상을 신청한 서울 강남 학원들이 낸 서류를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 9월 초 강남 20개 학원이 ‘수강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낸 자료는 모두 비용 부풀리기용 서류였다. 교과부는 이런 식의 학원비 인상을 막기 위해 입증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한편 학부모들에게 수강료 표준단가를 알려줄 방침이지만 ‘학원비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하기 어렵다.
▽비용 부풀리기에 혈안=강남 A학원은 개원할 때 건물주에게 낸 권리금도 수강료 인상의 근거로 내세웠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학원이 2년 전 지불한 권리금을 올해 학원비 인상 자료에 포함시킨 경우는 처음 본다”며 혀를 찼다.
B학원은 강사료를 지급할 때 현금 장부에 돈을 보낸 근거를 남기지 않아 교육청이 재조사를 벌이는 소동을 벌였다. 조사해보니 강사의 친척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 돈을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대포통장이었던 셈이다. 그래놓고도 이 학원은 강사료가 얼마인지에 대한 자료는 제출하지 않고 “강사료가 20% 올랐다”는 막연한 주장만 거듭했다.
일부 학원은 학원운영비를 계산할 때 회계사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학원 상황팀은 “회계사가 작성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컨설팅 수수료 자료는 아예 제출하지 않은 학원이 허다했다. 교과부의 한 공무원은 “수강료 인상에 유리한 자료만 내고 불리한 자료는 세무조사 등에 대비해 제외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5일 강남 학원들의 수강료 인상 요구안에 대해 “합리적 근거가 없다”며 모두 불허했다.
▽행정력은 턱없이 부족=교과부와 교육청 안에서는 “그나마 이번에 수강료 인상을 요청한 학원들은 순진한 편”이라는 동정론까지 나왔다. 현금을 거래하지만 기초 장부도 마련하지 않은 학원들에 비하면 “서류를 갖춘 학원들은 그보다 낫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예 장부도 없는 학원은 단속에 걸릴 확률이 희박하다는 게 학원상황팀의 얘기다. 한 관계자는 “서울 강남에만 2800개의 중소형 학원이 문을 열었는데 수강료 조사를 맡은 교육청 공무원은 5명 정도여서 정밀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교과부는 이런 행정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주 전국 시도교육청과 합동회의를 열고 지역별 수강료 단가를 학부모에게 알려주라고 지침을 내렸다. 서울시교육청은 수강료 인상을 요구하는 학원에 현금출납부, 수강료 영수증, 현금출납통장 사본 등 입증자료를 제출하도록 학원 규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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