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균 40점대, 반 32명 중 29등, 전교 380여 명 중 320등대. 김성환 군(서울 신수중 2)은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그만 눈앞이 하얘졌다. 난생 처음 등수 적힌 성적표를 받고 보니 ‘내가 중학교를 우습게 봤구나’란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이상한 건 수업시간에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었다. 김 군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평균 80점을 넘었던 것. ‘집에서 따로 공부한 걸까?’ ‘같이 놀았는데 왜 내 성적만 낮지?’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상해 차마 물어보진 못했다. 》
‘무식한 공부’로 최하위권 탈출… 이젠 상위권 도약도 “yes, I can”
친구와 놀다가 늦게야 집에 들어가 부모님 앞에 성적표를 내밀었다. 엄마 아빠는 그저 한숨만 지었다. 그날 밤 김 군은 담장 밑에 누군가가 웅크린 모습을 보았다. 눈물을 훔치고 있는 사람은 엄마였다. 가슴에 휙 찬바람이 불었다. ‘이제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공부하겠다’고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성적은 한꺼번에 오르지 않았다. 오를 듯 말 듯하다가 1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서 확 올랐다. 평균 70점대, 반에서 17등, 전교 170등대. 최하위권에서 당당히 중위권으로 도약한 것이었다. 김 군은 요령을 피우지 않고 기본기에 충실한 자신의 공부법을 ‘무식한 공부법’이라고 표현했다.
○ Before: 공부와 담을 쌓다
‘공부라는 건 왜 있는 걸까? 나중에서 커서 쓸 데가 있을까?’
김 군은 철들기 전에 이미 공부에 대한 회의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는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학교에선 친구 네댓 명과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장난을 치는 것이 일과였다. 종이를 구겨서 서로에게 던지거나 낙서를 하거나 시끄럽게 떠들다 보면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어차피 중학교 내신은 대학입시에 안 들어가는데 공부해서 뭣하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5시간, 시험기간에는 일주일 내내 하루 7시간 이상을 보내는 곳이 학원이었다. 김 군은 학원에서도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혼자 낙서를 하면서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학원에선 참 많이 혼났다. 시험을 안 봤다는 이유로 혼나고, 시험을 봤는데 점수가 낮단 이유로 또 혼났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일은 없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PC방과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일이 일상이었다. 시험기간에도 여유만만이었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마지못해 책상 앞에 앉은 뒤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런 모습을 엄마에게 들켜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책을 들여다보기는 했는데 졸려서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 After: 기본만 하면 중위권은 ‘No problem!’
김 군은 요즘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수업시간에 조용해졌다. 수업시작 종이 울리면 바로 자리에 정자세로 앉아 허리를 세우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다. 시선은 칠판에 고정하고 한쪽 팔은 아래에 다른 팔은 필기를 하기 위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내용도 놓치지 않고 필기한다. 김 군이 내민 국사 교과서에는 여러 색깔 볼펜으로 각 단락의 주제문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키워드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선생님이 “시험에 꼭 나온다”고 한 부분에는 별표도 커다랗게 그려 넣었다. 교과서 여백에는 ‘내물왕-진한의 여러 나라 정복,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왜군 격퇴’처럼 왕들의 이름을 쓰고 주요 업적을 요약해 놓기도 했다. 중요한 것이 한눈에 보이도록 평소 교과서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 놓은 것이다. 시험은 항상 이렇게 필기해둔 부분에서 나왔다.
자리는 교탁에서 멀지 않은 중간자리로 바꿨다. 키가 174cm인 김 군이 수업시간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으니 뒷자리 학생들이 몇 차례나 “머리 좀 숙여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시험기간에도 나름의 공부계획을 세우게 됐다. 예를 들어보자. 28, 29, 30일에 하루 세 과목씩 시험을 본다면 한 달 전부터 하루 세 과목씩 돌아가며 차례대로 공부한다. 이렇게 공부하다 보니 시험 전날에는 다음 날 시험 볼 과목 3개를 총정리할 수 있었다.
시험공부는 과목별로 ‘교과서 한 번 읽기→문제집에 나온 요약정리 외우기→문제집 문제풀이→오답 체크’ 순으로 한다. 문제집은 과목에 따라 수가 다르다. 국어, 수학, 과학은 2권씩, 한문, 기술가정, 도덕 등은 1권씩이다. 음악, 미술, 체육, 사회는 교과서 필기를 읽거나 프린트를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과목의 성격에 맞춰 가장 적합한 공부법을 고민한 결과라고 한다.
김 군이 좋아하는 건 사회과목. 사회는 공부를 하면 금방 점수가 올라서 재미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한문, 기술가정, 도덕, 음악, 미술, 체육 같은 암기과목도 좋아한다. 이런 과목들은 ‘꼼수’를 부리지 않고 본문, 표, 그림까지 무조건 외운다. 먼저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은 다음 책을 가리고 외워서 말해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 보고 외워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공부하는 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암기과목 성적을 올리기엔 좋은 방법이었다.
김 군은 “성적이 중위권으로 오르니 좋은 점이 많다”고 했다. 일단 집에서 ‘후하게’ 대접해준다는 것이다. 김 군을 대하는 가족들의 말투가 전에 없이 나긋나긋해졌다고 한다. 저녁 식사 시간에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어도 어머니는 예전처럼 “빨리 (식탁으로) 와!”라고 화를 내는 대신 “아들, 밥 먹자∼”라고 이야기한다. “무서운 학교 생활지도부 선생님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셨다”고 김 군은 전했다. 볼 때마다 “쯧쯧쯧”하고 혀를 차시던 선생님께서 요즘은 “어, 성환이 왔어?”라며 반겨주신다. 김 군은 “이 맛에 공부하는 거 아니겠느냐”며 소리 내어 웃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김 군은 알고 있다. 이제 최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왔을 뿐이다. 수학, 과학 등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과목은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김 군은 ‘이 과목들만 정복한다면 상위권 도약도 허황된 꿈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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