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전후해 중고교에선 2학기 중간고사가 실시된다.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극소수 학생은 얌체처럼 ‘커닝(시험부정행위)’할 방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한다. 부정행위는 절대로 ‘낭만적인 일’로 여겨질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을 회피하는 잘못된 행위다. 부정행위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일부 학생이 은밀하게 사용하는 부정행위 방법들을 낱낱이 밝혀본다. 시험 감독관들은 특히 귀담아 들어주시길 바란다.
○ 이런 학생, 수상하다!
먼저 자율학습시간에 한 학생이 작은 메모지 크기의 백지에 깨알같이 뭔가를 베껴 쓰면서 ‘토관정녹’(통일신라 시대 토지제도-관료전, 정전, 녹읍)처럼 암호 같은 문자만 쭉 나열하고 있다면? 이는 커닝페이퍼일 공산이 크므로 사전에 단속하도록 한다.
학생이 책을 펼쳐놓은 채 휴대전화 자판을 열심히 누르고 있다면? 휴대전화 메모장에 주관식으로 출제될 만한 영어단어 또는 수학공식을 입력하는 중일지도 모르므로 의심해보아야 한다. ‘시험일 아침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모두 수거하므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굳게 믿는 선생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정행위를 도모하는 학생은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험 당일 그들은 먼저 “저 오늘 휴대전화 안 가지고 왔어요”란 말로 선생님을 안심시킨 뒤 사전에 ‘무음(無音)’으로 설정해 놓은 휴대전화를 책상서랍 깊숙이 숨겨놓는다. 그런 다음 시험시간 필요할 때 몰래 꺼내어 본다.
고1 L 양은 “내신 성적에서 1, 2점 차로 대학입학의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부정행위에 동원되는 수단과 수법은 선생님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화했다”고 전했다. L 양은 “의리를 생각해 친구의 부정행위를 고자질하진 않지만 얄미울 때가 많다”면서 “시험 때마다 ‘학생들의 커닝 기술을 적나라하게 적은 편지를 익명으로 선생님께 보내볼까’란 생각까지 한다”고 했다.
책상 위, 필통, 필기구 등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부정행위의 도구로 사용된다. 특히 책상 위 흠집이 나 새까맣게 때가 낀 부분은 부정행위를 일삼는 학생 사이에선 ‘명당’으로 통한다. 그 부분에 까만 볼펜으로 내용을 적어놓으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넓적한 직사각형 모양의 지우개 또는 샤프심 케이스도 동원된다. 이 좁은 공간에 ‘염칼Cal₂’(‘염화칼슘·CaCl₂’의 의미)처럼 정보량을 최소화해 적는다. 선생님이 봤을 때 교과내용이란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암호화’해 놓는 것.
시험 중 “선생님, 저 지우개 필요한데요”라며 손을 드는 학생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감독관 선생님은 “누가 좀 빌려줘라”고 말한다. 바로 이 때 손을 든 학생과 미리 작당을 한 학생이 ‘커닝용 지우개’를 공개적(?)으로 빌려준다. 이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선 시험 감독에 들어갈 때 선생님 스스로 지우개, 샤프심, 연필, 볼펜을 지참하고 직접 학생들에게 빌려주면 된다.
답안지를 작성할 때 필요한 컴퓨터용 사인펜이 부정행위의 도구로 둔갑하기도 한다. 사인펜 속에 든 심을 빼면 커닝페이퍼를 돌돌 말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 사인펜을 책상에 올려놓고 선생님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몰래 커닝페이퍼를 꺼낸다.
이때 학생들은 사인펜을 적절히 움직이면서 마치 필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작을 쓴다. 커닝페이퍼를 꺼낸 뒤 손바닥 안에 감추고 재빨리 살펴본 뒤 곧바로 시험지 밑으로 숨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커닝페이퍼들은 손바닥으로 가려질 만큼의 크기(세로 7cm, 가로 5cm)다.
이런 방법도 선생님이 적발하거나 방지할 수 있다. 시험 도중 갑자기 “시험지를 모두 머리 위로 들라”거나 “필기구는 사용할 것 딱 한 자루만 남기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 선생님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방법들
대담한 방법으로 시험 감독관의 ‘허’를 찌르기도 한다. 교실 앞 칠판 위에 걸어놓는 급훈의 여백에 ‘홉스-성악설-자연권’처럼 시험에 나올 만한 핵심어를 크게 적어놓는 것. 칠판 가장자리에 써놓기도 한다. 모두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을 악용한 사례들. 또 검은 뿔테안경의 안쪽 가장자리에 하얀색 펜으로 핵심 정보를 적어놓은 뒤 안경을 고쳐 쓰는 체하며 훑어보기도 한다.
“OMR 카드를 더 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도 일단 의심한다. 시험시간에 “답을 밀려 썼다”는 핑계를 대고 여분의 OMR카드를 받아놓은 뒤, 쉬는 시간에 이 OMR 카드의 주관식 답란에 다음 시간 시험범위의 중요 내용을 미리 써놓는 것. 그리곤 이 카드를 시험시간에 버젓이 내놓고 커닝페이퍼로 사용한다.
중3 P 군은 “중간·기말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시가 심하지 않은 수행평가 쪽지시험에선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이 늘어난다”면서 “미리 각 반의 체육부장을 포섭해 점수에 반영되는 줄넘기나 윗몸일으키기 기록을 살짝 높이는 식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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