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다양한 문화활동 통해
남과 소통하는 언어 배워
달라진 자녀들 모습에 신기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2동 주민자치센터 강의실. 중학교 1학년 김예나(가명·13) 양이 도화지 한 장을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친구들이 저보고 쥐를 닮았다고 해요. 그래서 저를 나타내는 이미지로 쥐를 그려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는 빅뱅입니다. 가수 빅뱅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듣던 학생 10여 명이 까르르 웃었다. 김 양의 설명이 이어졌다. “친구를 잘 이해한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남의 흉을 잘 본다는 것은 단점인 것 같아요.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과 잘 통하고, 내 의견이 무조건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들하고는 가까이 지내기가 힘들어요.” 진지한 얘기가 이어지자 학생들은 금세 조용해졌다. 김 양이 자리로 돌아가 앉자 박수가 이어졌다. 몇몇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 대학이 우리 동네로
학생들은 이날 ‘사이 프로젝트’ 수업을 받았다. 사이 프로젝트는 올해 4월부터 마포구 성산2동과 연세대가 함께 진행하는 청소년 인문학 수업이다. ‘사이’는 ‘학교 안과 밖 사이’에서 따온 말. 학교 밖에서도 여러 문화활동을 통해 신나게 공부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1년 동안 3학기로 이뤄지는 이번 수업에 필요한 예산은 서울시가 지원하고 성산2동은 학생들을 모집한 뒤 강의실을 제공했다. 연세대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직접 수업을 진행한다. 교육 기회가 많지 않은 저소득층이 우선 대상이지만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수강할 수 있다. 서울시와 함께 이 사업을 기획한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교수는 “제도권 밖에서 남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다시 제도권으로 돌아가 함께 열매를 따먹고, 스스로 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보자는 의미”라며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남과 소통하는 언어를 배워 나가는 데 효과적인 수업들로 교과과정을 짰다”고 설명했다.
이달 9일부터 시작한 3학기 수업은 ‘생각 춤추기’란 이름이 붙었다. 자화상 콜라주, 롤링페이퍼, 역할극, 타임캡슐 만들기, 행동테스트 등을 통해 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전 학기에서는 영상물 제작, 자서전 쓰기, 문화로 세상읽기 등의 강의가 이어졌다. 이날 수업에서는 행동유형 검사를 통해 서로의 성격을 면밀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속마음을 그림이나 글로 드러내고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발표를 꺼리던 한 학생이 어렵게 발표를 끝내자 학생들은 “7년 동안 만나면서 이렇게 발표를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쑥스러워하던 학생들도 이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 국어, 영어, 수학(국영수)은 없지만 밝아지는 아이들
연세대 대학원생들은 학생들을 모집할 때 곤란한 질문도 많이 받았다. “국영수도 가르치는 것이냐”며 물어보는 부모가 많았던 것. 중학생들도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하는 현실 앞에서 부모들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의 학문이 ‘동네’로 파고들자 부모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딸을 이 수업에 보내고 있는 김영신 씨(38·여)는 “오후 10시까지 학원에 있는 딸이 안쓰러워서 ‘잘 놀아보라’는 생각에 보냈는데 무뚝뚝하던 아이가 많이 밝아져 신기하다”라며 “다른 지역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추천했다. 나임 교수는 “사실 처음 하는 사업이라 이론과 현장 사이의 괴리가 있어 어려움도 많다”고 전제한 뒤 “일회성 행사로 끝날 것이 아니라 대학과 지역사회 간의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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