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를 들고 15∼24년 동안 강원 춘천시 거리 곳곳을 누빈 유희웅, 김승만, 조태수 씨(58). 오랜 세월 쓰레기로 덮인 거리를 말끔히 치워온 이들이 29일에는 스스로 말쑥한 차림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춘천시가 이들을 위해 마련한 특별한 정년퇴임식 자리다.
이날 퇴임식에는 가족들을 비롯해 친지, 동료 환경미화원, 시청 공무원 등 150명이 참석해 고마움과 아쉬움의 시간을 나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춘천시 방송 담당자가 제작한 9분 분량의 영상물 소개 시간.
‘당신이 바로 춘천의 자랑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영상에는 유 씨와 김 씨가 출연했다. 이른 새벽 거리에서 청소하는 모습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는 장면 등이 생생히 담겨있다. 이들은 영상을 통해 가족과 후배들에게 덕담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다. 건강해야 돈도 많이 번다.” “직장이 따뜻해야 한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그런 직장이 돼야 한다.”
유 씨 부부는 또 경제적 여유가 없어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한 속내도 드러냈다. “학원 보내달라고 조르는데 못 보내준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이날 퇴임식에서는 차량기사로 이들과 동고동락해 온 최돈영 씨가 색소폰으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연주해 자리를 더욱 뜻 깊게 했다. 최 씨는 “함께 지내온 것이 몇 년인데 달랑 꽃다발만 전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부족한 솜씨지만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가족들은 퇴임하는 가장을 위한 편지를 낭송해 참석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퇴임식 아이디어를 낸 춘천시 김두옥 주민생활지원국장은 “출근길마다 만나는 깨끗한 거리는 미화원들의 땀의 결실”이라며 “시민과 지역을 위해 봉사해온 이들의 참 모습을 알리기 위해 공로패만 전달하는 의례적인 퇴임식이 아니라 이야기와 나눔이 있는 퇴임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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