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도 상복을 입었는데 추석까지 상복 차림으로 맞아야 하다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30일 용산 철거민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는 철거민 희생자 유가족 5명이 나란히 섰다. 이들은 전날 임명장을 받은 정운찬 국무총리에게 조속한 참사 현장 방문과 사태 수습을 바라는 목소리를 전하려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들은 인사청문회에서 “용산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고 실상을 파악하겠다”고 약속한 정 총리의 방문을 희망했다. 정 총리의 인사청문회 때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철거민 사망자 이성수 씨의 부인 권명숙 씨(47)는 “정 총리께서 내 앞에서 ‘총리로 임용되면 유족들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치던 것을 기억한다”며 “정 총리의 말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1월 20일 발생한 용산 철거민 참사는 사건 발생 250일을 훌쩍 넘겼지만 철거민 사망자 5명의 시신은 여전히 순천향대병원 시신안치소에 보관돼 있다. 장례식장 사용비 5억3000만여 원은 여전히 미납 상태다. 사태가 길어져 지친 기색이 역력한 유족들은 정 총리의 참사 현장 방문이 사태 해결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정 총리 방문이 가능한 한 빨리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유족과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의 변함없는 태도와 무리한 요구 때문이다.
이날 용산참사범대위는 정 총리가 방문할 때 용산 참사에서의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철거민들에게 임시시장과 임대상가 보장 방안을 제시하라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공개 검찰 수사기록 공개와 진압과정 재수사 요구도 되풀이했다. 불법적인 건물 점거나 진압 경찰관의 사망에 대한 책임 인정이나 유감 표명은 없이 정부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범대위 등이 중심이 돼 자체적으로 꾸린 이른바 ‘국민법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수십 명을 ‘피고인’으로 무더기 고소해 재판을 벌인다는 계획도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날 ‘용산 국민법정 준비위원회’는 이 대통령을 가혹행위와 살인 및 상해 교사 혐의로 기소하고 소환장을 발부하는 행사를 가졌다. 유족들이 아무리 “따뜻하게 맞이하겠다”고 해도 정 총리가 쉽게 용산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힘든 이유다.
많은 이가 고향과 부모, 조상을 찾는 한가위 명절이 왔지만 철거민 사망자들의 유족들은 올해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다. 장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추석 당일인 3일 참사 현장에서 영전 앞에 간단한 음식을 함께 올리기로 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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