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빙서류의 분량보다 더 큰 문제는 객관성과 신뢰성이다. 입시전문가의 컨설팅과 작업을 거친 자기소개서나 에세이, 경력 포트폴리오, 정체불명의 경시대회 주최 기관, 불분명한 대회 규모, 지역예선 유무(有無)를 알 수 없는 수상 실적. 조작과 과장의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입시서류 앞에서 입학사정관은 과연 어떻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까?
대학은 공정한 평가와 전형결과의 신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높이려고 수많은 워크숍, 해외연수, 지역별 협의체 구성을 추진했다. 또 입시서류의 객관적 평가를 담보하기 위해 대학은 입학사정관에 의한 교차평가와 다단계 반복평가를 시행하는 중이다.
정작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객관성이다. 공정한 경쟁과 객관적 평가를 토대로 얻어진 수험생의 개인별 자료가 없다면 입학사정관제의 성공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이를테면 경시대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개최기관 및 경시대회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는 대입평가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식 입학제도인 입학사정관제가 우리 사회에 2, 3년 만에 안착하리라고 기대하고 이런 업무를 추진하는 일은 사실상 과욕(過慾)이다.
주관적 평가 불신하는 사회풍토
또 하나 필요한 점은 입학사정관의 객관적 평가 못지않게 주관적 평가를 신뢰하는 사회적 풍토다. 입학사정관은 교과보다는 비교과 영역, 정량적 요소보다는 정성적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나 학교생활기록부의 정량적 수치가 훨씬 낮지만 합격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합격한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입학사정자료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줄이어 제기할 수 있다. 준법정신이 강한 미국사회에서조차 입학 관련 소송과 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입학사정관제가 적어도 당분간 우리 사회에 고통과 몸살을 수반하리라는 전망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입학사정관제는 고등학교 교사의 지속적인 평가와 성실한 협조를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미국 고등학교는 과목별로 매주 최소 1회 실시하는 퀴즈나 에세이를 채점, 기록하고 모든 성적을 인터넷으로 학부모에게 공개한다. 동아리 사회봉사 예체능활동으로 성적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더라도 수험생은 상세한 평가를 통해 입학사정관에게 정상참작을 호소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입학사정관은 수험생의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입학사정관이 아무리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일선 교사만큼 수험생을 심층적이고 전인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일선 교사는 수험생의 능력과 특성을 바로 옆에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이 성실한 교사와의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등학교 교사는 미국 대학위원회(College Board)로부터 SAT를 포함해 대학입학시험과 관련된 고급정보와 자료를 제공받는다. 본인이 원한다면 일선 교사는 입시 관련 워크숍에 참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가 입시 관련 고급정보에서 배제돼 있으니 수험생이 사설학원을 찾아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특별전형-기계적 가산점의 문제
근본적으로 보면 우리 입학제도에는 위헌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연방대법원은 1978년 베키(Bakke) 사건에서 흑인이 사회적 배려대상자일지라도 그들만을 위해 선발인원을 할당하는 특별전형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더 나아가 2003년에 연방대법원은 동일한 전형에서 함께 평가했더라도 인종 등과 같은 집단적 특성에 기계적인 가산점을 주는 일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입학사정관이 깊이 관여하는 전형에서는 특정 집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거나 혜택을 주는 사례가 있다. 전형의 다양화를 통해 다양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로 입학전형이 난립한 결과다. 입학사정관의 주관적 판단과 사회의 형평성 관념에 도전하는 학부모와 교육전문가가 위헌성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시간문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우리가 고교등급화를 거부했던 논리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늦기 전에 좀 더 넓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입학사정관제의 안착을 위해 입학제도 전체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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