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양형기준상 12년형 약한 것 아니다”

  • 입력 2009년 10월 2일 03시 00분


법무부 “국민 법감정 반영 못해” 조정 건의

■ 아동성폭행 형량 논란

“징역 12년은 너무 적다. 사형에 처해라.”

S양(8)을 성폭행하고 장기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12년 형이 확정된 조모 씨(57)에게 극형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1심 재판부가 처음에 법정 최고 형량인 무기징역을 선택했다가 조 씨가 술을 마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징역 12년으로 형을 감경한 것을 비판하는 여론이 많다.

하지만 법원과 법무부는 이런 비판에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에서까지 확정된 형량을 바꿀 수 없는 데다 법령을 고쳐 미성년자 성폭행범죄의 형량을 높인다 해도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 ‘혜진·예슬 납치살해사건’이 발생한 뒤 미성년자 성폭력범죄에 대한 법정 형량은 이전보다 높아졌다. 국회는 지난해 6월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법을 개정해 13세 미만의 여성을 강간한 사람에 대한 최저 형량을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높였고, 유사강간행위에 대한 처벌도 징역 3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높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13세 미만 아동 강간상해범에게 원칙적으로 징역 6∼9년, 형량을 가중할 때 징역 7∼11년을 선고하도록 한 양형기준을 올 7월부터 적용하고 있다. S양 사건은 지난해 12월 발생한 것이어서 이 양형기준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보다 높은 형이 선고됐다.

이 밖에 법무부는 지난해 9월부터 13세 미만 아동 상대 성폭력범죄자에게 최장 10년간 전자발찌를 부착하도록 했고, 보건복지가족부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한다.

이런 대책들이 도입되는 상황에서 또 새로운 대책을 만들긴 어렵다는 것이 법무부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가석방 없이 조 씨의 형을 집행하고 전자발찌 부착도 철저히 집행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응책만 내놓았다. 또 법무부는 1일 미성년자 성폭력범죄에 대해 더 높은 형량을 적용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조정해 달라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건의했다. 7월부터 적용되고 있는 양형기준에 대해선 “기준 형량을 높이긴 했지만, 국민의 법감정과 아동 성폭행범죄에 대한 엄단 의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국민의 법감정과 현행 법령 사이의 괴리는 법원이 항상 고민하는 어려운 문제”라며 “이번 판결도 조 씨의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량을 낮춰준 것이라기보다는 감경 요건을 고려하더라도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내리기 위해 애초에 무기징역을 선택한 것으로 봐 달라”고 설명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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