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으악∼ 악몽이 현실이 될 줄이야”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오늘 시험 완전히 죽 쒔어요. 그놈의 ‘꿈’ 때문에….”

2학기 중간고사가 한창인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수학, 생물 시험이 치러진 시험 둘째 날, 채점을 하던 고2 박모 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요 과목인지라 시험 당일 오전 1시까지 공부했건만 점수는 기대 이하. 박 군은 “간밤에 꾼 악몽이 현실이 됐다”면서 울상을 지었다.

“청소시간에 친구들과 채점을 하는데 두 과목 모두 100점을 맞은 거예요.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한 친구가 교실로 뛰어 들어오더니 ‘답이 모두 바뀌었다’고 외치는 거예요. 다시 채점을 해보니, 맙소사, 두 과목 다 ‘빵점’이었어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는데, 알람시계 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꿈이더라고요. 하지만 그 꿈 때문에 아침 내내 불안해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시험시간조차 지난밤 꾼 꿈이 자꾸 떠올라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박 군. 그는 “불길한 꿈 때문에 시험처럼 중요한 일을 망치는 불상사가 종종 일어난다”면서 “이런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시험기간 내내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거나 아예 잠을 자지 않는다는 학생도 있다”고 전했다.

공부 스트레스가 심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교생들은 악몽을 자주 꾼다. 아니나 다를까. 악몽의 ‘단골’ 소재는 ‘시험’과 ‘성적’이다. 시험시간에 깜빡 졸았는데 깨고 보니 시험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거나, 답안지에다 답안을 한 문제씩 밀려 쓴 사실을 시험 직후 쉬는 시간에 알아차린다는 ‘끔찍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고2 문모 양은 “전교 석차가 100등 이상 떨어진 성적표를 받아들거나 라이벌인 친구가 나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꿈도 몸서리가 쳐지는 악몽”이라면서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하지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에 대해 불안해하다 보니 꿈까지 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펙터클한 공상과학영화처럼 기상천외하거나 무시무시한 공포영화처럼 잔인무도한 꿈을 꾸는 경우도 있다. 정체 모를 괴물이 학교에 나타나거나 테러범이 총기를 난사해 교실이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하는 꿈(주로 학교 가기 싫을 때 꾸는 꿈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분필로 판서를 할 때마다 귀청을 찢을 듯한 쇳소리가 들려 혼자 고통스러워하는 꿈(오답노트 만드느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뒤 주로 꾸는 꿈이다)이 그 예.

중3 조모 양은 “개학이나 시험 직전처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땐 악몽을 꾼다”면서 “가끔은 가위에 눌려 울면서 잠에서 깨어나기도 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개월 앞둔 고3 사이에선 어떤 악몽이 최악의 악몽으로 꼽힐까. 바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꿈’이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들뜬 마음으로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막상 첫 등교를 해보니 대학 이름이 쓰인 간판만 희미하게 보일 뿐 학교는 정작 사라져버리고 없는’ 꿈이나 ‘지방으로 가는 버스를 탄 채 하염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는’ 꿈은 대입 수험생에겐 절대로 피하고 싶은 악몽이라고.

고3 김모 양은 “이런 악몽을 꾸면 시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고 공부할 맛도 나지 않는다”면서 “꿈이야 내 마음대로 꿀 수 없는 거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즘엔 머리맡에 십자가를 놓고 자거나 담력 좋은 여동생과 함께 잠을 잔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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