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공금 1898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동아건설 자금담당부장 박모 씨(48)가 횡령 기간 중에 사들인 고급빌라, 별장 등 각종 재산을 모두 자신의 소유가 아닌 타인 명의로 바꿔놓는 등 교묘하게 은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가 박 씨가 소유한 △경기 하남시 감북동 660m²(약 200평) 고급주택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별장 △내연녀 권모 씨(32)에게 선물한 서울 강동구 상일동 임대빌라 △은신처로 삼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빌라 등 관련 등기부등본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박 씨 본인 명의로 계약한 주택이나 땅은 하나도 없었다.
하남시 고급주택의 경우 현재도 타인 소유다. 박 씨는 이 주택을 3월 구입하며 돈을 다 지불했지만 박 씨의 부인 송모 씨(46) 명의로 ‘소유권이전 청구권 가등기’만 신청한 상태. 양평군 별장도 박 씨가 2007년 구입했지만 2년째 소유자는 다른 사람으로 돼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집을 사자마자 소유권부터 옮기는 데 박 씨는 돈은 다 내고도 소유권 이전은 안 하고 대신 팔았던 사람에게 공증을 받았다. 은닉의 달인인 셈”이라고 밝혔다.
내연녀 권 씨에게 얻어준 상일동 임대빌라도 자신의 어머니 명의로 계약했다. 박 씨가 현금 7억 원을 숨겨두고 9월부터 은신처로 삼았던 송파구 방이동 빌라도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지 않았다. 이 빌라는 부동산 회사가 집주인에게서 빌라 일부를 임차한 뒤 다시 세입자들에게 2∼3개월 단위로 월세를 놓는 집이다. 이런 빌라는 보증금 없이 월세만 선불로 내기 때문에 신분 확인을 거의 하지 않는 점을 이용한 것. 경찰은 아직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현금 1000억 원도 박 씨가 다양한 수법으로 감춰 놓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박 씨가 7월 8일 경찰 조사를 피해 잠적한 이후 보름여간 쓴 일기에는 회사에 대한 불만이 적혀 있었다. 박 씨는 7월 20일자 일기에 “회사가 날 너무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 계열사에 2000억 대여금은 횡령이 아닌가”라며 “그 돈이 회사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나도 나쁜 놈이지만 회사도 문제가 많다”고 썼다. 경찰은 박 씨가 혼자 거액을 횡령한 점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아 동아건설이 프라임그룹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회사 차원에서 자금을 빼돌리려 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박 씨는 또 일기에 “두렵다”, “애들 엄마에게 미안하다”, “초인종 소리에 놀랐다”, “아들이 뉴스를 보고 ‘아빠 영웅됐네’라고 말했다”는 등 잠적 기간의 복잡한 감정을 써놓기도 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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