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스웨덴 남부 도시 예테보리 인근 몬달 지역에 있는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동물 실험실.
일반 실험용 쥐보다 다섯 배 뚱뚱한 쥐가 실험대 위에 누워 있다. 몸의 50%가 지방인 쥐는 움직이지 못하고 뱃살을 늘어뜨린 채 누워 숨을 쉬는 것이 고작이다.
여성 연구원이 능숙하게 일정 시간마다 미세한 양의 피를 뽑아 혈당을 확인한다. 이 연구원은 14년째 쥐를 키우고 혈액을 뽑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오고 있다.
실험 과정을 지켜본 한 한국인 의사는 “한국에서는 쥐 키우는 일까지 모두 연구교수가 해야 하는데 여기는 모든 분야가 전문화돼 있는 것 같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韓-日의학자 年3만5000달러 지원
‘비만 대유행’ 시대 대비 집중연구
중국등 8개국에 R&D센터 17곳
“한국서도 복제약보다 신약 나와야”
○ 국경 없는 연구개발(R&D)
스웨덴 아스트라와 영국 제네카의 합작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다국적 제약사로 세계 제약시장에서 5위다. 특히 소화기계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한국인 의사 7명은 연구원들과 만나 연구 분야에 대해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기 위해 아스트라제네카를 찾았다. 이 제약사는 한국, 일본 의학자들에게 연간 3만5000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가상신약개발연구소’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채한정 전북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는 “한국에서 연구비를 받으면 계속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 회사는 중간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한국 연구자들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글로벌 연구개발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반준우 학술상무는 올해로 세 번째인 ‘가상신약개발연구소’ 프로젝트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들은 주로 비만과 관계있는 당뇨병, 동맥경화를 연구하고 있다. 피터 워너 아스트라제네카 비만·당뇨분야 이사는 “2015년까지 전 인구의 66%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 되는 ‘비만 대유행’이 올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자들은 비슷한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연구원들과 일대일로 만나 토론했다. 박정의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토론을 마치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토론했지만 서로에게 상당히 좋은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 R&D센터를 세우면서 세계 8개국에 17개 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노벨 의학상 선정 기관으로 알려진 스웨덴 카롤린스카대, 미국 컬럼비아대, 싱가포르 국립암센터와 R&D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셸 안데르손 과학협력 이사는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다면 우리는 작은 제약사나 연구소를 가리지 않고 공동개발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 한국 신약 개발은 걸음마 단계
국내 상황은 어떨까. 국가임상시험사업단의 임상시험 승인현황에 따르면 국내 임상시험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6년 임상승인 건수가 218건에서 2007년 282건, 2008년 400건, 2009년 6월 현재 169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임상시험 중에 1단계 통과가 가장 어려운데도 매년 통과 건수가 2006년 68건, 2007년 58건, 2008년 86건, 2009년 6월 현재 42건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한국은 복제약 개발 수준에서 머물다 2004년 본격적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연간 400여 건인 임상 승인 건수도 국내 제약사가 300∼400여 개인 것에 비하면 적은 수다. 전문가들은 국내 신약 개발이 취약한 이유에 대해 R&D 투자가 미흡하고 임상, 비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에서 제약산업을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향후 10년에 걸쳐 약 1조 원의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초과학 연구 기반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 ‘따라올 수 없는 약을 만들어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인구 8만 명의 소도시 쇠데르텔리에는 아스트라제네카 직원 4000여 명이 살고 있어 ‘아스트라제네카 타운’으로 불린다. 이곳 공장은 연간 알약 100억여 개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천식약 ‘심비코트’의 생산라인에는 시계 회사로 유명한 세이코에서 특별 주문제작한 기계가 있다. 페테르 알바르손 공장장은 “용기에 분말 형태의 약을 담는 기계”라고 소개하며 “미세한 양을 정확하고 일정하게 담아야 하기 때문에 시계 회사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흡입하는 약품인 심비코트는 약이 얼마나 체내로 잘 들어가 흡수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화학물질을 미세한 크기로 분해하고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둥근 모양으로 입자를 깎는 특유의 기술이 동원된다. 알바르손 공장장은 “이 기술은 아마 다른 공장에서는 따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작은 회사였던 아스트라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1988년 출시된 위산억제제 ‘로섹’ 덕분이었다. 이 약은 개발 착수 이후 22년 만에 출시됐다. 임상 전 과정까지 세 번이나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를 넘겼고 임상시험에도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로섹 개발에 참여했던 안데르손 이사는 “신약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 단계까지 가는 신약후보물질은 10% 정도이고 출시단계까지 가는 물질은 1% 정도에 불과하다”며 “실패 위험이 다른 산업보다 크다는 것이 신약개발 산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아는 한국 제약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는 회사는 없지만 대부분 복제약을 만드는 것으로 안다”며 “한국처럼 높은 경제 수준을 가진 국가라면 세계적인 신약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예테보리=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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