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의 A대는 2010학년도 신입생 750명 중 600명을 입학사정관제로 뽑을 계획이다. 이 중 250명은 수학과 과학 성적 우수자, 260명은 학교 성적 우수자 가운데에서 선발할 예정이다. 각종 학력을 따지지 않고 뽑는 인원은 전체의 20%에도 못 미치는 90명뿐이다. 수도권의 B대도 내년 신입생 1289명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다. 그러나 토익 900점에 준하는 공인어학성적이 없는 학생들은 ‘글로벌리더 전형’에 지원할 수 없다. ‘학업우수자 전형’에서는 1단계에서 교과 성적 80%가 반영된 학교생활기록부를 제출해야 한다. 결국 외국어능력과 학교 성적이 바탕이 된다는 얘기다.
내년 신입생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기로 한 대학들이 이처럼 교과 성적과 외국어능력, 특정과목 성적우수자, 수상실적 등 각종 학력에 따른 선발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외부로 드러난 학력이 아니라 대학이나 모집단위가 요구하는 잠재력과 소질을 위주로 학생을 뽑는다는 입학사정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무늬만 입학사정관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9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에 따르면 전국 47개 대학은 내년도 신입생 2만4430명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선발키로 했으며 이 중 32.1%인 7841명은 각종 학력을 기준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이는 김 의원이 각 대학의 사업신청서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대학들이 기준으로 삼은 학력별 선발 인원은 교과 성적이 3150명(40.2%)으로 가장 많았고, 외국어 능력(2460명, 31.4%) 특정과목 성적우수자(1347명, 17.2%) 특목고 출신(9.9%, 780명) 수상 실적(104명, 1.3%) 등의 순이었다.
특히 교과부가 입학사정관제 도입 모범 대학으로 평가해 학교당 10억∼30억 원씩의 예산을 지원하는 이른바 ‘선도대학’은 선발 인원의 절반가량인 46.7%를 각종 학력을 기준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울산과기대는 입학사정관제 선발 인원의 83.3%를 각종 학력과 경력 위주로 뽑기로 했고, 연세대(82.7%) KAIST(80.4%) 광주과기대(80%) 이화여대(72.7%) 경희대(51.2%) 중앙대(49.9%) 등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김 의원은 “입학사정관제가 대학들의 예산 확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정책의 연착륙을 위해 입학사정관제의 시범사업 추진 등 단계적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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