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대니 보일이라는 영국 감독이 인도 현지의 무명 배우들을 캐스팅해 만든 인디(독립) 영화 한 편이 최고 영예인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무려 8개 부문을 휩쓸어버린 것이죠.
문제의 영화는 바로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였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무슨 뜻일까요?
‘슬럼독(Slumdog)’이란 단어는 ‘빈민가’를 뜻하는 ‘Slum’에다 ‘개’라는 뜻의 ‘Dog’가 합쳐져 만들어진 합성어인데요.
그러니까 ‘빈민출신 백만장자’란 의미가 되겠죠.
이 영화, 감각적인 카메라 워크와 속도감 넘치는 편집이 일품인데요.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영화에 담긴 내용입니다.
아니, 도대체 어찌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요?》
[1] 스토리라인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 18세 청년 ‘자말’은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 없는 가난한 고아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TV 퀴즈쇼인 ‘백만장자 퀴즈쇼’에 나가게 되는데요. 마지막 문제까지 맞히면 무려 2000만 루피(약 6억 원)의 상금을 타게 되는 퀴즈쇼였습니다.
저명한 교수나 의사, 변호사도 도전했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최종 우승자가 나오지 않은 이 어려운 퀴즈쇼에 불학무식한 자말이 도전합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자말이 연속해서 정답을 맞히면서 승승장구해 대망의 최종문제를 앞두게 된 것이죠.
긴장된 순간, 경찰은 자말을 사기혐의로 체포합니다. 그리곤 “너 같은 녀석이 문제를 죄다 맞힐 리가 없어! 방송국 내 어떤 자와 사전에 짰는지를 실토하라”며 무지막지한 고문을 자행합니다.
자말은 정말 속임수를 썼던 걸까요? 아닙니다. 자말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할 노릇이었습니다. 나오는 문제마다 자신이 과거 우연히 경험했던 사건들을 떠올리면 그 정답이 생각났으니까요. 자말의 기가 막힌 사연을 전해들은 경찰은 혀를 내두르며 그를 풀어주고, 방송국으로 돌아간 자말은 드디어 최종 퀴즈문제와 마주하게 되죠. 문제는 이랬어요.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등장하는 주인공 삼총사 중 아토스, 프르토스를 제외한 마지막 세 번째 인물은 누구일까요? 보기 A, 아라미스. 보기 B, 카디날 리첼류. 보기 C, 달타냥. 보기 D, 플란쳇.”
쉬운 문제라고요? 아닙니다. 난감하게도 이번 문제는 자말로선 알 도리가 없었어요. 자신의 과거경험을 아주 살짝 비껴나간 문제였으니까요. 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 자말은 전화찬스를 사용합니다. 오래전 아쉽게 헤어진 여자친구인 ‘라티카’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지요.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라티카와 전화연결이 된 자말. 하지만 이런 불운이 있을까요? 라티카는 “도저히 답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자, 자말은 과연 최종 문제를 풀고 백만장자의 꿈을 이룰까요?
[2] 생각 키우기
경찰에서 자말의 진술이 펼쳐짐에 따라 자말이 경험했던 기상천외하고 때론 가슴 쓰린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이제는 갱이 되어버린 친형과 헤어지게 된 슬픈 사연, ‘라티카’라는 이름의 소녀를 운명적으로 만나 헤어진 뒤 평생 그녀를 찾아 헤매왔던 기구한 사연이 소개되지요.
근데, 아무리 우연이라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요? 퀴즈쇼에서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자말이 곰곰이 자신의 과거경험을 회상해 보면 그 속에 모두 정답이 숨어있었다니 말이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퀴즈쇼에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
“‘다르샨 도 간샴’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유명한 인도 시인의 작품입니다. 그 시인은 누구일까요?”
자말이 눈을 감고 가만히 반추(反芻)해보니, 어린시절 형과 함께 조직폭력배들에게 납치당해 앵벌이(불량배의 조종을 받는 아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벌이를 하는 것)를 강요당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당시 폭력배들은 납치한 아이들에게 ‘다르샨 도 간샴’이란 노래를 차례로 불러보게 했던 것이죠. 그리곤 이 노래를 참으로 구성지게 부르는 아이들만 골라 그들의 눈을 멀게 해 불쌍하게 보이게 한 뒤 앵벌이를 시켰습니다. 이런 회상 속에서 자말은 이 악몽 같은 노래의 가사를 지은 시인이 바로 ‘수르다스’였단 사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어찌 문제의 정답을 모를 수 있단 말입니까.
바로 이겁니다! 이 영화가 이토록 절묘한 줄거리를 통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2개의 키워드 속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 키워드는 바로 ‘우연(Accident)’과 ‘운명(Destiny)’이지요!
왜냐고요? 생각해 보세요. 퀴즈쇼에 나간 자말이 자신이 아는 문제와 맞닥뜨린 것은 그야말로 ‘우연’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런 우연은 퀴즈쇼 속에서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결국엔 최종 라운드에까지 이르게 되죠. 이 과정을 통해 영화는 말해요. 자말이 겪는 우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매순간 최선의 노력으로 삶을 살아온 자말 스스로가 만들어낸 ‘운명’이었다고 말이에요.
이 대목에서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어요. “우연이 반복되면 그야말로 우연이지 그게 어떻게 운명이 될 수가 있어?”라고 말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 우연은 뭘까요? 또 운명은 뭘까요? 그리고 우연과 운명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한번 예를 들어보지요. 영국의 천재물리학자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혀냈던 17세기로 되돌아가 보겠어요.
뉴턴은 어느 날 우연히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거야!’하며 만유인력의 법칙에 관한 결정적인 실마리를 얻었다고 전해져요. 자, 이때 사과가 뉴턴의 눈앞에 떨어진 것은 당연히 우연이겠죠? 하지만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는 순간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 것도 우연이었을까요? 아니죠. 그건 바로 운명인 것이죠. 뉴턴이 아닌, 그 누구 앞에 사과가 떨어졌던들 이 위대한 과학의 법칙을 발견해낼 수 있었겠느냐는 말입니다. 뉴턴이 세상을 이루는 근원적인 법칙을 규명하고자 자나 깨나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눈앞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척’ 하고 떠올릴 수 있었겠느냔 거죠.
그렇습니다! 우연과 운명은 알고 보면 한 핏줄입니다. 우연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우연적’인 사건을 ‘운명적’인 결과로 만들어내는 건, 바로 우리 인간의 뜨거운 의지와 몰입의 정신이죠.
로맨틱코미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운명’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우연’이라고 하는 다리를 놓아준다….”
주인공인 자말은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이건 나의 운명(This is my destiny)”이라고…. 정말 그렇습니다. 우연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이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이에게 하늘이 내려주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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