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현장 ‘남일당 건물’ 둘러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2일 14시 25분



2명이 가까스로 지나갈 만한 계단 통로는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악취가 진동했고 걸을 때마다 깨진 창문과 화염병 파편이 밟혀 '뿌지직' 하는 굉음이 을씨년스럽게 울려 퍼졌다. 화재 원인의 단서가 될 만한 심지가 꽂힌 화염병, 기름통, 녹아내린 콘센트 등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제 역할을 못한 소화기도 타다 만 채 쓰러져 있었다.

서울 용산 화재 참사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한양석)가 12일 현장 검증을 실시하면서 사건 발생 9개월 만에 외부에 공개된 용산구 남일당빌딩은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당시의 처참한 광경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 기자 등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1시간 40분 동안 이어진 현장검증에서는 발화 원인이 될만한 정황을 놓고 검사와 변호인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양측의 논쟁은 철거민들이 망루를 만들어 놓고 재개발 보상을 요구하던 옥상에 다다르자 더욱 거세졌다. 망루는 화마(火魔)에 휩쓸려 철골구조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검찰은 "철골 구조물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어 이 사이로 농성자들이 경찰을 향해 시너를 쏟아 붓고 화염병을 던지면서 망루 3층에서 불이 번졌다"며 널려있는 화염병과 '청정등유'라고 적힌 플라스틱 기름통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화염병이 사용된 것인지 아닌지 증거가 없다. 망루 입구에 콘센트가 있고 배전판과 발전기도 옥상에 있었다"며 누전에 의한 화재를 주장했다.

용산 참사 사건 1심은 검찰이 수사기록의 일부를 공개하지 않아 3개월간 파행을 거듭했다. 재판부는 현재 일주일에 두 번 씩 재판을 여는 집중심리 방식으로 이달 말경 재판을 마무리 지을 방침이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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