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이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학생들은 시험 3주 전부터 계획을 세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엔 두세 명만 모여도 “시험 끝나고 뭐하고 놀까”라며 의논하기 바쁘다. 그간 쌓인 공부 스트레스, 밤샘 시험공부로 누적된 피로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 단 하루. 시험이 끝나는 날,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하루를 보낼까?
이달 1일, 마지막 시험을 치른 고2 윤모 양(17)과 최모 양(17)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타로카드 점집’을 찾았다.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요즘 예비 고3인 이들의 관심사는 대학 입학.
“내년에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지 물어봤어요. ‘정확한 합격, 불합격은 말할 수 없고 내년에 중요한 시험을 세 번 치르는데 두 번은 결과가 좀 안 좋지만 한 번은 결과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6, 9월 평가원 모의고사는 좀 망치고, 수능은 ‘대박’ 나는 거 아닐까요?(웃음)”(최 양)
윤 양은 연애 운세에 대해 물었다. 내년 3월에 연상의 남자를 만나게 된단다. 혹시 그때쯤 남자 대학생에게 과외수업을 받다가 ‘명문대 학생이 내 남자친구가 되지 않을까’ 설렌다는 윤 양. 그는 “아직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고1 때랑 똑같은데 부담감은 고3 같다”면서 “시험 끝난 날 단 하루지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차곡차곡 적어놓았다가 이날 ‘풀코스’로 즐기는 학생들도 있다. 워낙 많은 일을 하루에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를 고려한 이동 루트를 치밀하게 짜는 것이 핵심.
고1 박모 양(16·서울 중랑구 신내동)은 단짝친구와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 △영화관람 △미용실 가기 △카페에서 수다 떨기 △청바지 사기 계획을 실행했다.
“오전 11시에 시험 끝나자마자 일단 명동으로 달려갔어요. 몇 달 전부터 보고 싶던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요.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피자전문점에 가서 새로 나온 피자를 먹었어요. 인터넷에서 미리 검색해본 미용실에 가서 요즘 ‘완전’ 인기 있는 브아걸(여성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를 줄인 이름)의 가인(멤버 이름) 헤어스타일로 변신했고요. 청바지 사고, 카페에서 와플 먹고 카페라테 마시면서 부은 다리 좀 가라앉히고, 마지막 코스인 노래방에 갔죠. 주인아저씨가 서비스(추가 시간)를 팍팍 줘서 두 시간 놀고 오후 8시 넘어 집에 들어갔어요.”(박 양)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며 공부 스트레스를 푸는 학생도 많다. 원 없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엔 오늘 본 시험도, 며칠 후 나올 성적표도 잊을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이 시기 놀이동산은 학생들로 북적댄다. 고2 박모 군(17·경기 안양시)도 1일 여자친구, 다른 친구 커플 두 쌍과 함께 서울의 한 놀이동산에 갔다. 정오 쯤 도착해 폐장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나왔다. 박 군은 “3주 전부터 장소, 멤버 구성, 예상 경비 등 계획을 세우며 남은 시험기간을 버텼다”면서 “수능 전 마지막으로 마음 편히 놀 기회라는 생각으로 신나게 놀았다”고 했다.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일탈’을 꿈꾸는 고등학생도 극히 일부 있다. 마음 같아선 1박 2일 탁 트인 바다로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부모의 허락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 이 경우 학생들은 서울 건국대 입구, 신촌, 홍익대 앞 등 대학가를 찾는다. 교복과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준비하는 것은 기본. 이때는 신분증 검사에 소홀한 술집을 알고 있는 친구가 앞장을 선다고 한다.
고2 정모 군(17·서울 강남구 청담동)은 “낮에는 PC방이나 노래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저녁이 되면 움직인다”면서 “대학생들 틈에서 맥주 마시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시험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