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000건 뜁니다” 전보의 고군분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2일 20시 13분


1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전화국 지하 '115 전보 사무국.' 두 대의 프린터에서 메시지가 적힌 종이가 1~2분 간격으로 토스트처럼 톡톡 튀어 나오고 있었다. '승진을 축하합니다' '시험 잘 봐' 같은 내용이 대부분. 낯익은 이름도 보였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게 서울대 동문회 행사를 알리는 전보였다. 100여 통의 전보가 배달함에 쌓여 있었고, 여직원은 출력된 종이를 카드에 붙이느라 바빴다. 혜화전화국은 국내에서 전보를 가장 많이 받는 곳. 요즘은 인사철, 입학시즌 같은 성수기가 아닌데도 하루 200~300통의 전보가 들어온다. 전보 배달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1시, 오후 5시 등 하루 3번이다.

전보 하루 8000건, 수신 1위는 종로
국내 전보 서비스는 올해로 124년 째.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같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아날로그 통신수단의 대표인 전보는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KT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보 이용 건수는 213만5417건으로 하루 평균 7908건이었다. 2006년 401만 건, 2007년 370만 건, 2008년 297만 건 등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역별로는 지난해 17만8000건의 전보를 받은 종로(혜화)가 수신 건수 기준 1위였고 수원(11만2000), 영등포(8만1000), 강남(영동·7만6000), 대전(7만2000건) 등이 뒤를 이었다. 대체로 정부 공공기관, 금융기관, 대기업 밀집지역이다. 전보 내용은 승진축하, 인사발령, 동창회 안내 등이 대부분. 이용자는 30, 40대 남성 직장인들이 가장 많다. KT 관계자는 "종로에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가장 전보를 많이 받는다"고 귀띔했다.

이모티콘 전보까지… 전보의 진화
디지털 시대에 전보의 생존력은 어디서 나올까. KT 종로 북부지사 심원구 지사장은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같은 의사소통 수단에 서툴거나 예의를 차리고 싶은, 혹은 '문서'로 남기길 원하는 사람들이 전보의 주요 고객층"이라고 말했다.
이용하는 전보는 1000원짜리 일반전보(내용만 봉투에 넣어 보내는 형태)가 24%이고, 41가지 디자인의 카드전보가 전체의 76%에 이른다. KT는 디자인업체 10곳과 협약을 맺고 3개월 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신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전보도 등장했다. 감정 표현이 가능한 '이모티콘 전보',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사연을 써서 한 명에게 보내는 '종이비행기 전보' 등이 대표적이다. 전보가 특별한 날을 위한 '이벤트 미디어'로 발전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사업성이 떨어져 KT 내부에서 폐지론도 나오고 있다. 전보 사업은 지난해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전보를 취급하는 전화국도 올해 초 133개에서 108개로 줄었다. KT 관계자는 "전보 관련 부서에선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 안내 책자를 들고 관공서나 기관을 찾아가 영업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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