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경임]고열만큼 위험한 ‘빗나간 교육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4일 03시 00분


남이 감염되든 말든 내 자식은 학교로…



“엄마, 나 신종 인플루엔자 맞아요. 우리 반에 걸린 친구가 있단 말이에요.”(학생 환자)

“그냥 감기야. 의사 선생님, 타미플루 안 먹어도 되겠죠.”(학부모)

2일 기자에게 서울 동작구에서 내과를 운영한다는 송경란 원장(가명)의 전화가 걸려 왔다. 송 원장은 이 같은 대화 내용을 전하면서 “학생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데 일부 학부모가 무리해서 자녀를 학교에 보낸다”고 말했다. 흥분한 어조였다.

신종 플루 증상이 있으면 항바이러스제 복용 기간인 5일 동안 학교를 쉬어야 하고 시험은 격리 교실에서 치러야 한다. 하지만 기말고사를 앞둔 중3 학생들이 신종 플루에 감염된 사실을 감춘 채 등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업에 빠지면 혼자만 진도를 놓치게 되고, 시험 환경이 달라지면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그런다는 얘기였다. 확진 검사를 받고도 결과를 보러 오지 않는 고3 학생들도 있다.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한 뒤 보통 하루나 이틀이면 열이 떨어진다. 일단 열이 떨어지면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학생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송 원장은 “완치소견서를 발급하면 장당 1만 원을 더 벌 수 있다. 그런데도 밀려드는 환자를 보기 위해 완치소견서를 발급하지 않기로 했지만 학부모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며 계속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신종 플루 주요 감염원이 학부모들의 ‘교육열’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학교 수업도 못 듣는데 학원까지 빠지면 교내 수학경시대회 준비는 어떻게 하느냐”는 학부모도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6일 신종 플루에 감염되고도 진단이 늦어져 사망한 7세 초등학생 A 군의 부모는 “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이 신종 플루에 걸린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의사에게 더 철저한 치료를 요구했을 텐데…” 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실상 학교가 감염을 방치한 셈이다.

6학년 초등생 자녀를 둔 신모 씨(43·서울 서대문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신 씨는 감기에 걸린 아이를 결석시키려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다가 ‘학교가 곧 휴교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확진환자가 나왔는지 여러 차례 물었지만 선생님은 답변을 꺼렸다.

내 자녀가, 내 학생이 환자라는 것을 쉬쉬하는 사이에 신종 플루는 학교를 통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지난주 집단 감염이 발생한 1148곳 중에 학교가 1134곳이었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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