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돌이,길건너 덕유산 길없어 못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4일 03시 00분


반달곰들 국도-고속도 싸여 고립밤나무숲 지나다 올무에 죽을 수도
50마리 넘으면 과포화 상태 우려“굴-생태다리로 이동경로 조성을”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약 15m 높이의 나무에 올라 저 멀리 있는 산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반달곰들은 덕유산을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하고 지리산에서만 먹이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원 측은 “88고속도로 등 주변 자동차도로의 통행량이 계속 늘어 반달곰이 길을 건너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약 15m 높이의 나무에 올라 저 멀리 있는 산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반달곰들은 덕유산을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하고 지리산에서만 먹이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원 측은 “88고속도로 등 주변 자동차도로의 통행량이 계속 늘어 반달곰이 길을 건너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3년 현장 순찰을 하다 지리산에 시험 방사한 반달곰인 ‘반돌이’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던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은 작은 탄성을 질렀다. 2001년 지리산 남쪽 지역인 전남 구례군 구례읍 문수리 계곡에서 방사된 반돌이가 지리산 북쪽인 전북 남원시 운봉읍 신기리 국도 24호선에서 발견된 것. 도로 주변을 서성이거나 가끔씩 도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움직임으로 볼 때 길을 건너려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반돌이는 끝내 발길을 돌렸다.

○ 넘을 수 없는 국도의 벽

반돌이가 이동을 멈추고 돌아간 지점은 지형적으로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넘어가기 가장 수월한 곳이다. 국도 24호선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지만 차량 통행이 비교적 많아 동물들이 건너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국립 환경과학원 측 설명이다. 더욱이 이 지역에는 이 국도 외에도 88고속도로를 비롯한 2∼4차로 국도 여러 개가 더 있다. 반돌이로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건너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

반돌이가 건너지 못했던 길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사된 17마리의 반달곰들에게도 ‘건널 수 없는 길’이 되고 있다. 종 복원을 위해 방사된 반달가슴곰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사실상 고립된 상태라는 것이 과학원의 설명이다. 방사를 통한 반달곰 확산 계획이 도로에 막혀 무산된 셈이다. 과학원이 최근 3년간 반달곰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연구한 결과 17마리 중 88고속도로를 한 번이라도 넘은 적이 있는 곰은 단 한 마리로 분석됐다.

○ 소나무도 길 막아

반달곰의 이동을 막는 것은 도로뿐만이 아니다. 생태 통로 인근에 심어진 나무가 반달곰의 이동에 딴죽을 걸기도 한다. 지형상 반달곰이 덕유산을 드나들기 적합할 것으로 파악됐지만 반달곰이 얼씬도 하지 않는 곳에는 어김없이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과학원 측은 “침엽수림에는 반달곰의 먹잇감이 많지 않은 데다 곰이 침엽수의 진액을 싫어하기 때문에 접근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전했다.

겨우 도로를 건너더라도 덕유산에 가기 전에 올무에 걸려 죽거나 다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88고속도로를 건넌 직후 펼쳐지는 밤나무 숲에 올무가 많기 때문이다. 과학원 측은 “밤나무 숲은 대부분 농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조성한 것이기 때문에 농민들이 야생동물 피해를 막기 위해 올무를 많이 쳐 놓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반달곰을 본격적으로 방사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올무에 걸려 죽거나 실종된 반달곰 4마리는 모두 밤나무 숲 근처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농가에서 심은 밤나무 때문에 반달곰이 먹이를 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억지로 길을 건너려던 곰이 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이는 ‘로드킬’도 걱정거리다.

○ 생태통로 구축으로 ‘살길’ 틔워

과학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1년 반달곰을 처음 방사할 때 생태통로를 구축할 계획까지는 세우지 못했다. 일단 반달곰이 지리산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달곰이 야생에 잘 적응하는 등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개체 수가 크게 늘어날 때를 대비해 생태통로를 만들기로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이배근 과장은 “면적이나 먹이 양 등을 고려할 때 50마리까지는 지리산에서 충분히 살 수 있지만 그 이상 개체 수가 늘면 먹이활동 등이 어려워지는 ‘과포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태통로는 지리산∼덕유산 이동 통로로 적합한 곳의 주변 환경을 고려해 자동차 도로 위로 생태다리를 놓거나 아래로 굴을 뚫는 방법을 쓰게 된다. 인근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나 밤나무 숲은 산림청, 농가 등의 협조를 얻어 오랜 기간에 걸쳐 활엽수로 교체해 반달곰의 야생성을 지키면서 적당한 먹이 활동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명진 과학원 생태평가과장은 “생태통로를 조성하면서 이 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밀렵 방지 대책도 함께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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