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빨래터 진품이라는 적극적 증거 부족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4일 14시 53분


국내 최고 경매가 작품인 박수근 화백의 유화 '빨래터'에 대해 "위작 의혹을 제기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관심을 모았던 진품 여부에 대해 법원은 "이 작품이 박 화백으로부터 건네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작품이 진품인지에 대해서는 적극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유보적인 판단을 내렸다.

박 화백의 '빨래터' 진품 논란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4~1956년까지 한국에 상사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존 릭스 씨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박 화백에게 일본을 오가며 그림재료를 사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 화백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그림 5점을 주었다. 릭스 씨는 5점 중 하나가 빨래터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5년 경 릭스 씨의 아내는 중병을 얻어 사망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 릭스 씨의 딸은 경매 카탈로그에서 박 화백 풍의 그림이 비싸게 팔리는 것을 알고 '빨래터'를 경매에 내놓게 됐다. 이 그림은 2006년 미국 경매업체인 소더비를 거쳐 이듬해 5월 서울옥션에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 2000만 원에 팔렸다.

그러나 8개월 뒤 미술잡지인 아트레이드가 이 그림이 짝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서울옥션은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2년 가까이 이 작품을 감정하고 관련 증거들을 조사한 끝에 4일 아트레이드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조원철)은 "국내 최고가로 낙찰된 미술품의 진위 여부에 의혹이 있다면 이를 공개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미술계의 당연한 임무"라며 "서울옥션은 박 화백의 50년대 미공개작이면서도 다른 작품에 비해 스타일이 생경하고 보관 상태가 완벽해 의심을 살 만한 데도, 감정 결과를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않아 위작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고 밝혔다.

작품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진품으로 가리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고 과학감정 결과 진품이라는 점에 대한 적극적인 증거로 보긴 어렵다"며 진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다만 "릭스 씨와 박 화백이 50년 대 당시 친분을 갖게 됐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으며 박 화백의 그림에 대해 논하는 점 등을 비춰 볼 때 릭스 씨가 박 화백으로부터 이 사건의 그림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림이 진짜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박 화백으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그림을 받은 것은 맞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서울옥션 측은 "빨래터가 진품이란 사실을 확인한 판결로 받아들인다"며 항소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종식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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