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상비군 코치 권모 씨(33)는 2008년 말 선수 12명을 데리고 동계훈련에 나섰지만 하루하루가 걱정이었다. 국가보조금으로 지원되는 훈련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 급식비는 1인당 2만3000원, 숙박비는 1만7000원에 그쳤다. 시설이용비는 1인당 3만 원이었고 부상선수가 많았지만 약품비는 1인당 3000원에 불과했다.
반면 돈 쓸 곳은 많았다. 훈련장이 강남구 수서동에 있지만 숙소는 강동구 둔촌동에 있어 이동수단이 필요했다. 약품비가 추가로 들었고 부상 방지를 위해 체육관 난방을 충분히 가동하다 보니 시설이용비도 초과됐다. 권 씨는 “숙박업소와 상의해 법인카드로는 2인 1실 기준의 비용으로 결제하고 실제로는 4인 1실을 쓴 후 숙박료의 30% 정도를 돌려받아 훈련에 필요한 경비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권 씨는 3일 국가대표 훈련비 등 국가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입건됐다.
○“방 하나에 두세 명씩 자는데…”
체육지도자들이 카드깡을 통해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비 등 국가보조금을 횡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체육계가 시끄럽다. 체육인들은 “규정에 벗어나게 법인카드를 쓴 책임을 져야 하지만 부족한 훈련비와 현실에 맞지 않는 회계 처리 등 구조적인 문제로 체육지도자들이 범법자가 될 형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훈련비 유용 혐의로 입건된 상비군 감독 이모 씨(44)는 지난해 한일 청소년 스포츠 교류대회에 국내 유망주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당시 정부보조금은 1인당 숙박비 3만 원, 식비 3만 원, 교류비 1만 원에 그쳤다. 통역비 36만 원, 시설이용비 20만 원. 경기 후 일본선수단과 식사를 해야 했지만 지원비용은 1인당 1만 원에 불과했다. 이 씨도 선수들에게 3인 1실을 쓰게 하는 등 숙박비용을 줄여 부족한 비용을 충당했다. 이 씨는 “개인적으로 쓴 것은 없다”고 밝혔다.
국가대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김중수 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은 24일 국제대회를 앞두고 선수단 55명을 자신의 고향인 전남 화순으로 데려가 훈련 중이다. 화순을 선택한 이유는 비용 때문. 김 감독은 “선수 1인당 전지훈련지원비가 하루 4만 원”이라며 “비용이 부족하다보니 지인, 지역관계자들에게 의료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고향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에서 훈련 중인 조명준 하키 국가대표 감독도 “비용이 부족한데 선수들을 위해 저녁식사로 고기류를 먹이다 보니 적자가 났다. 나중에 어떻게 해서라도 보충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훈련비 지원 현실화 시급
국가대표나 상비군 훈련비는 대한체육회가 사업비 명목으로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신청하면 해당 금액(정부보조금)이 나온다. 대한체육회는 이를 법인카드에 넣어 산하 57개 가맹경기단체에 제공한다. 하지만 정부보조금의 액수나 사용가능한 항목이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보니 카드깡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
박필순 대한체육회 홍보실장은 “사재를 털어서 선수들 고기를 사먹이는 지도자들도 많은데 모든 국가대표 상비군 지도자들이 훈련비를 유용한 것처럼 비칠까봐 걱정”이라며 “정부보조금 사용 항목이 정해져 있어 그 외를 사용하면 무조건 불법이 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한체육회는 △급식비, 숙박비 단가 간 탄력적 운영 △기타경비에 대한 예산반영 등 훈련비 지원을 현실화할 계획이다. 4월에는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장차관을 만나 이를 상의하기도 했다. 김성철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장은 “국가대표 감독 코치들이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람은 책임을 지겠지만 이참에 제도적으로 잘못된 부분은 수정돼야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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