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메트로 엿보기]“세종대왕 눈앞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0일 03시 00분


광화문광장에 영어조형물 설치 방문객 ‘눈총’
해시계 등 꼭 필요한 곳엔 외국어 안내문 없어

2일부터 4일까지 세종대왕은 ‘불편한 동거’를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 영어 ‘WATER’를 본떠 만든 조형물이 약 2m 높이로 설치된 것입니다. 물을 주제로 열린 ‘2009 대한민국 공익광고제’에서 주최 측인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설치한 조형물이었습니다.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는 “세종대왕이 지켜보는 곳에 영어 조형물은 적절치 않다”며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공사 측은 행사 폐막 하루 전인 4일 조형물을 철거했습니다. 공사 관계자는 “시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설치했지만 한글문화연대 측 주장이 일리가 있어 철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글문화연대는 한발 더 나아가 “광화문광장을 ‘우리말글 우선 사용지역’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의 ‘플라워 카펫’도 우리말로 바꾸자는 공문을 서울시에 보냈습니다. 서울시는 “새로 꽃을 심을 내년부터는 공모를 통해 우리말로 바꾸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정작 광화문광장은 꼭 필요한 곳에 외국어가 없는 상황입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해시계, 측우기 등에는 한글과 로마자 표기로 이름만 적어놨습니다. 외국인들은 이것들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동상 뒤편에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6개의 열주(列柱·줄기둥)에도 외국어 설명은 없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통행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데다 이곳만큼은 외국어 사용을 자제하자는 의견이 있어 세종이야기에만 외국어 안내문을 비치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플라워 카펫 입구 해치 조형물 옆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친절하게 설명된 안내판이 있습니다. 정의를 지킨다는 상상 속 동물 해치는 서울시의 상징입니다. 세종대왕이 외국어와 ‘불편한 동거’가 아닌, ‘편한 동거’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할 시점인 듯합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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