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유족 “원인 꼭 밝혀달라”… 日언론 “대피시설은 있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중학 동창모임 첫 해외여행
유족 “여행 기대 컸는데” 오열
“낡은 건물 화재 취약했을 것”
日언론 안전불감증 꼬집어


“한국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일 교류가 활발한데 이런 일이 일어나 비참합니다.”

15일 오후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25명의 일본인 유족들은 이 같은 사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유족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대체로 차분함을 유지했다. 가족끼리 서로 부축하며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 유족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사망자 아라키 히데테루(荒木英輝·36) 씨의 부친 아라키 히데타다(荒木英忠·67) 씨는 정운찬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아들이 한국여행을 즐겁게 생각하면서 많이 기다렸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한 뒤 계속 눈물을 흘렸다. 다른 유족들은 정 총리의 위로에 귀 기울이며 울먹였다.

유족들은 시신이 안치된 양산부산대병원에 이어 사고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오후 5시경 일본 영사관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사고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경찰이 수사 상황을 발표하자 곳곳에서 그 내용을 받아 적기도 했다. 현장 보존을 위해 경찰이 출입을 통제해 2층 사격장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곳곳에서 “화재 원인이 대체 무엇인가?” “화인(火因)을 꼭 밝혀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사격장 문을 제발 열어 달라”는 부모도 있었다. 15분가량 현장에 머문 이들은 숨진 가족을 위해 3분가량 묵념을 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중학교 동창들이 한국으로 단체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한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운젠(雲仙) 시 아즈마(吾妻) 마을의 피해자 가족들은 충격으로 할 말을 잃었다. 사상자 11명 가운데 9명은 운젠시립 아즈마중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중학교 시절 야구부나 소프트볼부 소속으로 지금도 팀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경기를 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이들은 돈을 모아 3년에 한 차례 정도 단체여행을 하고 있으며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낙농업 종사자나 회사원인 이들은 지역의 축제 행사에도 적극 참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쿠보 아키라(大久保章·37) 씨의 한 친척은 “오쿠보와 며칠 전 함께 술을 마실 때만 해도 한국 가서 사격을 하게 됐다며 좋아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시마테쓰(島鐵)관광의 모회사인 시마바라(島原)철도(나가사키 현 시마바라 시 소재)는 14일 밤 기자회견을 열어 “변을 당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죄송하다”며 사죄했다.

50대인 오치아이 마사히로(落合政洋·56) 씨와 나가하마 마사노리(永浜正則·57) 씨는 별도 여행사를 통해 한국에 왔다가 사격장을 찾았다.

○ 일본 언론 사고 소식 대서특필

일본 언론은 사고 소식을 크게 보도하면서 한국의 안전불감증을 꼬집었다. 일본의 소방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히라노 도시스케(平野敏右) 지바(千葉)과학대 학장은 “사고가 난 사격장은 밀폐된 공간인 데다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설도 없었던 것 같다”며 “우레탄 등 불에 잘 타는 소재가 방음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어 불이 삽시간에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부산의 일본인회 관계자는 “화재 현장은 낡은 건물인 데다 천장이 낮고 환기가 안 돼 이전부터 화재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2006년 4월에도 서울의 한 실내사격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일본인 관광객 3명이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양산=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사망-부상자 명단
▽사망자(10명)=△아라키 히데테루(荒木英輝·36) △이나다 아쓰노부(稻田篤信·37) △오쿠보 아키라(大久保章·37) △나카오 가즈노부(中尾和信·37) △마에다 다이키(前田大輝·36) △미야자키 히데타카(宮崎英生·36) △오치아이 마사히로(落合政洋·56) △나가하마 마사노리(永浜正則·57) △이명숙(40·여·KR여행사 가이드) △심길성(31·종업원)

▽부상자(6명)=△하라다 요헤이(原田洋平·37) △가사하라 마사루(笠原勝·37) △시마다 아키라(島田明·37) △문민자(66·여·세일관광 가이드) △임재훈(31·종업원) △종업원 추정 1명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1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