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노총, YS정권땐 ‘복수노조-교섭창구 단일화’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산별노조 확산… 상황 달라져”
13년전 입장 최근 들어 번복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행을 놓고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당초에는 1개 노조에 대표교섭권을 부여하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노총은 현재 모든 사업장 내 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되 교섭창구 단일화 여부는 노사자율로 결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노조 난립으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과반수 노조에 교섭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공개한 ‘노사관계개혁백서’(1998년)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13년 전인 1996년 1기 노사관계개혁위(노개위)에서 ‘복수노조를 전면 허용하되 교섭창구는 단일화할 것’을 주장했다. 또 한국노총은 “창구단일화는 일단 노조에 그 의무를 부여하고 안 될 경우 미국식의 배타적 교섭대표제를 검토하거나 (창구 단일화를)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보완돼야 한다”고 밝혔다. 배타적 교섭대표제란 1개 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경영계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요구했다.

한국노총 고위 관계자는 “당시 창구 단일화는 기업별 노조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산별 노조가 확산된 지금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여러 회사 노조가 모인 산별 노조에서 창구 단일화를 하면 거대 기업 노조만 사실상 영구적으로 교섭권을 갖게 돼 중소·영세 노조는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양대 노총 간의 역학관계가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합법화(1999년)되기 전이어서 교섭창구 단일화는 곧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교섭권을 갖는 것을 의미했다.

교섭창구를 단일화할 경우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도 이전 주장과 달라진 것이다. 한국노총은 “법 개정 없이 행정법규(행정명령·행정규칙을 이르는 말)로 창구 단일화를 할 수 있다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의 말은 초법적인 말”이라며 “창구 단일화는 교섭권이라는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기 노개위에서 민주노총은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는 노개위에서 방법과 시기를 논의해 시행령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규칙 등은 법률이 아닌 행정기관에 의해 정해지는 준칙으로 시행규칙, 시행령, 시행지침 등이 포함된다. ‘법 개정’과 ‘행정법규로 가능’ 모두 일정 부분 일리가 있어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동계의 한 핵심 인사는 “사안 자체보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정치논리가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13년이 지나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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