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사 없이 심사원 이름만 도용해 서류 위조 기업들이 상품이나 서비스 품질을 대외적으로 공인받기 위해 많이 신청하는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서의 발급 과정에 문서위조 같은 비리가 만연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부남)는 ISO 인증 심사를 담당하는 ‘인증심사원(審査員)’의 명의를 도용하고 허위 심사보고서를 만들어 ISO 인증서를 부정 발급한 혐의(사문서 위조 및 위조 사문서 행사)로 6명을 적발해 M인증원 대표 안모 씨(54)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A인증원 대표 심모 씨(46)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국내외 대기업 등에 상품을 판매하려는 중소기업으로서는 판로 확보를 위해 품질인증 등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높다. 또 ISO 인증서를 받으면 국가가 발주하는 계약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지고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때 우대금리를 적용받는 혜택도 있어 많은 중소기업이 인증서를 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인증서 발급은 꼼꼼한 심사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다. 기업이 인증업체에 인증서 발급 신청을 하면 인증업체에 소속되거나 외부에 있는 ‘인증심사원’이 서류를 검토하고 현장을 정밀 답사해 인증서 발급에 적합한지를 판단한 뒤 심사보고서와 인증추천서 등을 인증업체에 제출한다. 전기 기계 가스 자동차 등 해당 분야의 심사자격을 가지고 있는 인증심사원의 판단에 따라 국제규격에 적합하면 인증업체는 유효기간 3년짜리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ISO 인증서 발급 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안 씨 등 인증업체 대표들은 기업 등으로부터 인증서 발급 신청이 들어오면 인증심사원에게 심사를 의뢰하지도 않았으면서 심사원의 이름을 넣어 심사보고서와 인증추천서 등 심사 관련 서류를 위조했다. 안 씨는 2007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런 수법으로 심사보고서 436건을 위조해 정상적인 심사 절차를 거친 것처럼 조작한 뒤 ISO 인증서를 발급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인증업체 5곳에서 총 1173건의 인증서가 부정 발급된 사실을 밝혀냈다.
안 씨 등 인증업체 대표들은 인증 절차를 모두 생략했기 때문에 인증심사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비용은 지출하지 않았으면서도 인증서 발급을 신청한 기업에서 건당 70만∼180만 원의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안 씨가 2년여간 이렇게 챙긴 돈은 7억4000만 원. 구속 기소된 나머지 3명의 인증업체 대표들도 1억9000만∼5억3000만 원을 챙겼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인증업체는 총 104개에 이르지만 검찰은 이번에 수사의 효율성 등을 감안해 인증심사원 명의 도용 혐의가 짙은 대표 업체 10여 곳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다.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ISO 인증서 부정 발급을 사문서 위조 등으로 기소한 것은 허위심사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관련 형사처벌 규정을 빨리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ISO 인증제도:: 기업 등 특정 조직의 품질이나 환경경영시스템이 국제표준화기구에서 마련한 국제규격에 적합하게 구축돼 있음을 증명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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