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이외에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어요. 특히 선생님이 되겠다는 당초 목표가 요리사, 가수, 사진작가로 계속 바뀌면서 공부는 뒷전이었죠. 1년 반 사이 학교 내신 점수는 25점 이상 뚝 떨어졌어요.”
경기 수원시 송원중학교 1학년 이승희 양(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평균 96점 이상인 모범생이었다. 적극적인 성격의 이 양은 수업시간에 모르는 대목은 거침없이 손을 들고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중간·기말고사는 3주 전부터 준비했다. 과목마다 문제집을 한 권 풀고, 다 푼 뒤엔 몰라서 틀린 문제와 실수로 틀린 문제를 오려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목표는 이 양에겐 학습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초, ‘선생님’이란 꿈이 흔들리면서 찾아온 방황은 1년 넘게 지속됐다.
○ ‘가상 세계’에서 공부의 길을 잃다
이 양은 매일 인터넷에 접속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쇼핑, 게임, 채팅을 하다보면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TV와 잡지에서 패션모델이 입은 멋진 옷과 신발을 보면 똑같은 제품을 찾느라 여러 사이트를 헤매고 다녔다.
포털 사이트에서 보는 이런저런 기사들은 오히려 공부의 집중력을 흩뜨렸다. 패션디자이너, 영화배우, 요리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인물의 성공담을 읽을 때마다 꿈도 변했다.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다 보면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수업시간에 적극적이던 자세는 사라졌다. 6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별다른 준비 없이 치렀다.
평균점수가 85점으로 떨어졌다. 5학년에 비해 10점 이상 하락했지만 큰 자극이 되진 않았다. 반면 “너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의 말은 이 양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다.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보다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교과서 대신 패션잡지를 읽었다. 문제를 푸는 일이 따분하게 느껴졌다. 방과 후엔 분식집, 노래방, PC방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이 사이 성적은 80점 대 초반으로 더 떨어졌다.
“‘갑자기 왜 그러니?’ ‘뭐가 문제니?’ 하고 부모님이 물으시는데 괜히 화가 났어요. ‘내가 알아서 한다’면서 처음으로 대들었죠. 사춘기였거든요. 일단 ‘평균 80점 이하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했어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업시간엔 집중해서 공부했지만, 성적은 여전히 평균 80점대. 이런 중위권 성적은 이 양이 중학생이 되어 치르는 첫 중간고사까지 이어졌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 친구와 답을 맞추어보던 이 양이 입을 꾹 다물었다. 반 5등 안팎인 친구들의 답안지와 자신의 답안지가 상당 부분 달랐기 때문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결과는 평균 78점. 처참했다. 반 41명 중 20등 안에도 들지 못했다.
“70점대 점수는 난생 처음이었어요. 집으로 오는 길에 펑펑 울었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반성문(그래픽 참조)을 혼자 쓰면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생각해봤어요. 지금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정하기 보단 미래를 위해 실력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 양은 원인을 분석했다. 왜 성적이 떨어졌는지, 최상위권에서 중하위권으로 떨어지기까지 공부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영어와 과학 성적이 폭락한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했다. 해결책이 보였다.
○ 중하위권의 습관을 버려라!
먼저 이 양은 수업시간 열심히 듣기만 했던 소극적 자세를 바꿨다. 선생님의 설명을 노트에 빠짐없이 기록하고 모르는 부분은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질문해 궁금증을 해결했다. 아예 ‘질문노트’를 만들어 혼자 해결하지 못한 문제나 이해되지 않는 개념은 적어놓고 수시로 물었다.
주 3일 수업을 진행하는 종합학원에도 등록했다. 1년 반 사이 부실해진 기초실력을 보강하기 위해서였다. 이 양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방과 후엔 학원 자습실로 직행해 그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학습계획은 취약과목 위주로 세웠다.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하는 습관이 학습 불균형을 초래했기 때문. 평균 성적을 떨어뜨리는 영어, 과학은 매일 1시간씩 꾸준히 공부하도록 계획을 짰다.
흥미나 관심이 없으면 공부를 해도 기억에 오래 남지 않고 실력 향상도 더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 양은 취약과목을 재미있게 공부할 방법을 찾았다.
영어는 매일 인터넷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문기사 하나를 찾아 읽고 해석했다. 새로 알게 된 단어는 단어장에 적어 놓고 틈틈이 외웠다. 주말엔 주중에 공부한 기사를 다시 한 번 읽고 암기한 단어를 재확인했다. 영어 듣기 문제는 MP3플레이어에 다운받아 등하굣길에 반복해 들었다.
과학은 자문자답(自問自答) 형식으로 공부했다. 교과서를 정독하면서 단원별로 꼭 암기해야 할 개념, 원리, 실험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교과서와 노트필기 내용을 충분히 익히고 문제집까지 푼 뒤엔 미리 적어놓은 키워드만 보고 관련 내용을 스스로 말로 설명하는 훈련을 했다. 시험 직전엔 친구들에게 핵심내용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했다. 인근 학교 20여 곳의 기출문제도 빠짐없이 풀었다.
이 양은 2학기 중간고사에서 평균 95.5점으로 반 1등을, 전교에선 321명 중 8등을 차지했다. 전교 등수를 110등 이상 끌어올린 이 양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꼭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면서 “인터넷 쇼핑이나 게임은 ‘주말에 한해 30분만 한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고 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 이승희 양의 반성문.
이 양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평균 78점을 받은 뒤 다음과 같은 반성문을 스스로 썼다.
“좌절” 이 한 단어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표현되는 것 같다. 오늘 기말고사가 끝났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결과가 좋지 않다. 우울하다. 아무리 시험을 못 봤다고 해도 평균 80점 이상은 나왔었는데…. 중학교 첫 중간고사 때도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때보다 평균 10점 더 떨어졌다.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난날에 대한 후회 때문에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내가 받았던 시험 점수 중 최악이다.
자만심 때문이었다. 시험이 끝난 후에야 깨달았다. 앞으로는 나 자신에 대해 겸손해져야겠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해서 예전의 내 위치로 돌아가야겠다. 아니, 그 이상으로 성적을 올려야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원래의 공부습관을 찾는 것이다.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겠다. 이제 나에게 딱 맞는 학원도 알아봐야겠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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